그렇다면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by eolpit

깊이에의 강요

스무 살 무렵 난 친구에게 '깊이'를 강요했다.

깊이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깊이를 강요했다는 것은 내면을 보여 달라는 요청이었다.

'너의 내면을 보여 줘', '너의 내면에 담긴 상처를 보여 줘.'

그래야 상대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는 쉽사리 그 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가 아니라 그저 친구에게 깊이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여기 작품에 관심을 받기 시작한 여성 화가가 있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말이 기사로 실렸다. '그녀는 재능이 많고 작품도 호감을 이끌지만, 그 작품엔 깊이가 없다.' 그 기사 이후로 그녀는 깊이가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는 타락해 버린다.

소설 속 평론가, 그리고 감상자들도 화가에게 내가 갖던 깊이를 원한 게 아닐까.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녀의 생각이 무엇이길래 이런 작품을 만든 것인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작품을 막 인정받은 젊은 화가의 내면을 읽을 수는 없었으리라. 왜냐면 그녀의 삶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말에 그녀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진짜 깊이가 없나 되묻고, 이윽고는 깊이 따위는 없다고 확신해 버린 것이다.

나에게 깊이를 강요받던 친구도 그러했다. 자신에게 깊이가 없는 것인가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깊이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고민이 되었다고 했다. 남의 말에 흔들리는 건 누구든지 그럴 수 있다.

여기 <승부>라는 작품도 그러하다.



승부

체스판을 두고 두 사람이 앉아 있다. 한 명은 늙은 '장'이고 다른 한 명은 '장'에게 도전하는 젊은이다. 장과 젊은이는 서로 반대되는 인상을 가졌다. 젊은이가 권태로운 눈빛에 냉담한 분위기, 전체적으로 게임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지니면서 비범한 인상을 준다면, 장은 상대를 지치게 해서 증오심을 품게 하는 태도로 게임을 일관했고, 그러나 실수는 절대 하지 않는 모습이다. 구경꾼들은 모두 젊은이를 응원했다. 그의 비범함, 천재성을 운운하며 그가 체스 말을 둘 때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감탄하며 생각했다.

구경꾼들은 젊은이가 상대의 전략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을 두는 자신감 있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 장 역시 그러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기고 있음에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지 않았고, 시종일관 신중하게 말을 두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도 허무하게 장이 이겼다. 알고 보니 젊은이는 체스를 이제 막 두기 시작한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은 자신이 진정으로 패배했음을 인정한다. 체스를 두는 내내 장은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낮추며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풋내기 앞에서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긴 것 ㅡ 그것이 진정한 패배였다.

<깊이에의 강요>의 화가 역시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겼다. 그것은 <승부>의 장과 같이 진정한 패배를 겪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나다. 나는 진정한 패배를 겪었나? 아니 질문이 잘못됐다. 나는 진정한 패배를 지금도 하고 있는가?

제대로 이겨본 적 없다. 항상 패배를 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았고, 항상 남의 눈이 맞다고 생각하며, 내가 나를 의심한다. 내가 나를 조심하며 살아가는 건 한편으론 겸손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비굴한 것이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일이었다.

젊은 화가처럼 타락하지 않으려면,
행복한 삶을 살아보려면,
답은 하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너무도 허무하게 장이 이겼다. 알고 보니 젊은이는 체스를 이제 막 두기 시작한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은 자신이 진정으로 패배했음을 인정한다. 체스를 두는 내내 장은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낮추며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풋내기 앞에서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긴 것 ㅡ 그것이 진정한 패배였다.



<깊이에의 강요>의 화가 역시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겼다. 그것은 <승부>의 장과 같이 진정한 패배를 겪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나다. 나는 진정한 패배를 겪었나? 아니 질문이 잘못됐다. 나는 진정한 패배를 지금도 하고 있는가?

제대로 이겨본 적 없다. 항상 패배를 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았고, 항상 남의 눈이 맞다고 생각하며, 내가 나를 의심한다. 내가 나를 조심하며 살아가는 건 한편으론 겸손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비굴한 것이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일이었다.



젊은 화가처럼 타락하지 않으려면,

행복한 삶을 살아보려면,

답은 하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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