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를 습격한 이유는 허무에서 시작됐다. 허무함이 가득 차 우주의 공백을 그대로 삼켜버린 기분을 느낀 두 청년은 공복감을 해소하고자 빵가게를 습격한다. 어째서 공복감이 생겼을까. 소설 속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니, 공복감은 직접적으로 상상력의 부족 때문에 생기는지도 모른다"
이때의 상상력이란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상상, 즉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미래에 대한 상상인 것 같다.
나 자신의 허무를 돌이켜본다. 허무함이란 건 20대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손님이었다. 잘은 못 하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대학 졸업이 다가오자 열심히 하는 건 소용없다는 허무감이 밀려들었고, 일을 열심히 배우면 발전해 나가는 줄 알았는데 열심히 해도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허무감이 또 찾아왔다.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착하게 살면 좋은 일이 올 줄 알았는데 그 좋은 일이란 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 허무했다. 각종 허무가 난무했다.
허무함이 찾아올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소설 속 두 청년은 빵가게를 습격한다. 그리고 가게 주인과 거래를 시작한다. 빵을 마음대로 가지고 가는 대신 클래식을 들어야 한다는 거래. 허무함이 공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먹기를 선택한다는 건 충분히 겪어서 이해가 된다. 그리고 빵가게 주인을 협박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두 청년은 정말 배가 고픈 게 아니다. 빵만 가지고 갈 수 없다. '어떤 행위'가 그들에게 필요했고, 그 행위에 따른 '의미'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가게 주인을 살해하고 빵을 가져갈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러나 주인이 제안한, 죽이는 것 대신 클래식을 듣는 것을 수용했다. 그 역시도 '의미'를 만들 수 있고 잠시나마 자신들의 허무함을 없앨 수 있으며 가게 주인에게도 그 편이 더 좋다는 결론에서였다. 그렇게 클래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두 청년은 그날 이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한다.
나는 각종 허무가 찾아올 때 허무함을 주는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방법을 취했다. 인간에게 허무함이 찾아오면 인간을 멀리했고, 일이 그러하면 일에 대해 덜 집중했고. 그러면서 결국엔 '나' 자신에게 집중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나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내 내면으로 들어가다 보면 허무함은 어느새 '열심히 하자'라는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만약 그 사건이 사람들 눈에 혹시 기묘하게 비친다면, 그 원인은 그 사건을 포함한 총체적 상황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뭔가 달라지는 건 없다. 달라지는 건 단순히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와 다시 빵가게를 습격한 <빵가게 재습격> 또한 사고방식을 바꾸게 하기 위한 행동이다. 아내는 자신의 불가사리 한 공복감을 결혼과 관계 지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결혼에 어떤 허무함을 느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모르나 허무함은 조건에 맞춰 오는 건 아니니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그리고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도 동의한다.
인간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한 순간 변하기 어렵다. 그러나 서서히 바뀔 순 있다. 그리고 눈에 띄진 않지만 서서히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그 생각 하나가 결국엔 많은 것을 변화시키리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니 허무함도 그렇게 극복해보는 거다. 사고방식을 천천히 바꾸는 것으로. 상상을 발휘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