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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un 29. 2021

오늘부터 300일_04

어릴 적 꿈


가족과 친구에게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봐야 했는데, 묻지 못했어요. 처음엔 언니에게 묻고 싶었어요. 그런데 언니의 답을 알 것만 같아서 묻지 못했죠. 언니는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면, 언니를 따라서 저의 꿈도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학교에서 꿈을 적어서 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때 언니 따라 딱 한 번 '선생님'이라고 적었어요. 그 뒤로는 제 자신을 알았던 건지 언니와 다르게 적기 시작했죠. 언니는 '선생님'이라는 직업과 잘 어울렸어요. 단아하고 예쁘고 희고. 그러던 언니가 대학생이 되어서는 공무원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언니는 포기했죠. 이걸 묻기 전에, 우연히 대화하다가 알게 되었어요. 아니 그전부터 전 알았어요. 언니가 집안의 경제 형편을 보고 공부를 그만하는걸. 그래서 안타까웠죠. 그러나 '더 해 봐.'라고 부추기진 못 했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소극적이었을까요. 지금은 언니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어른에게, 그리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꿈을 묻는 게 조금은 조심스러워요.



저의 꿈은 '선생님'을 거쳐 '작가, 만화가'가 되었어요. 그림과 관련된 상을 몇 번 받더니 '만화가'가 꿈이 되었죠. 그리고 '작가'는 읽는 게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상은 그림으로 더 많이 받았으니까요. 그렇다고 어렸을 적부터 책을 읽은 건 아니에요. 책은 스무 살이 되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구 읽어 들이기 시작했어요. 그전엔 멀리했죠.



지금 생각해 보니 우스워요. '선생님, 작가, 만화가'라는 꿈 중에 스무 살이 되어서는 '선생님'이라는 꿈을 제외한 두 가지의 꿈을 어렴풋이나마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정작 지금 하는 일은 '선생님'과 비슷하다니요. 어찌 된 일일까요. 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말하는 게 부끄러웠고, 설명도 잘 못하고, 남을 포용하는 것도 부족하고. 그런 제가 주말엔 학생에게 이런 말을 들었어요. "선생님, 잘 가르치시는 거 같아요. 제가 그동안 과외 한 번 그리고... 학원을 다녔는데... 그중에서 말이에요..." 제가 잘 가르친다고요? 그 말을 듣고 놀랐어요. 그렇게 느끼는 학생도 있구나 싶어서. 고마웠죠. 참 별일도 다 있죠.



동생에게 어릴 적 꿈이 뭐였냐고 물으니 역사학자였대요. 지금 제가 동생을 보기에도 관심사가 그쪽이거든요? 사람이 일관성이 있다며 감탄했어요. 사람은 어릴 적 영향을 크게 받나 봐요. 어릴 적 모습이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의 저는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요? 어려서도 그랬듯이 꿈을 진취적으로 꾸거나 행동하진 않아요. 얇은 유리컵을 손에 쥐고 조심히 걷듯이, 꿈을 조심히 껴안고 있죠. 그런 저이기에, 조심히 껴안고 있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여전히 만화가와 작가가 있어요. 이젠 선생님도 있죠. 그림책 작가도 있고요, 작업실이 있어서 거기서 학생들도 가르치면서 책도 읽고 싶어요. 서점 주인도 꿈이에요. 꿈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하진 않지만... 저는 아직도 품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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