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olpit Aug 25. 2021

오늘도 헛소리

브런치에 글 올리는 마음가짐


아침에 일어나 보니 메시지 하나 와 있었다. 브런치 초대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친구의 의도를 안다. 브런치 작가를 해 보라고, 이런 것도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이미 브런치 작가다. 친구에게 말한 적은 없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일이 너무 기뻤지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들을 쓰는 내가 무슨... 그렇지만 친구의 초대장은 기분이 좋았다.



읽었으니 뱉어낼 때인가? 책상에 책들이 쌓여 있다. 완전한 행복, 푸른 세계, 무지개 곶의 찻집, 랩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사물의 뒷모습, 김미경의 리부트, 순례 주택,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읽어야 할 책 들이고 읽고 싶은 책들이다. 한 권도 해결하지 못한 채 돌아가며 조금씩 읽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읽는다. 이런 나를... 친구는 알까. 스스로는 적지 않은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게 뱉어내기 위한 작업은 아니다. 재미있어서 읽었을 뿐. 그리고 뱉어낸다면 또 무엇을 뱉을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저런 작가처럼 기발한 생각도, 깨달음도 나에겐 없다고. 무엇을 뱉을 수 있을까.



수다를 떨다가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길치에 관한 이야기. 처음에 다닌 학원 이야기다. 그 학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원장님은 여자로 나와 열 살 차이밖에 안 났다. 친척 오빠뻘이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일을 했던 때다. 일을 몇 년간 지속해오던 어느 날 일찍 도착한 학원이... 심심했다. 그래서 밖을 나가 구경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길치니까 조금은 헤맬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시간이 여유로우니 괜찮다고 여겼다. 위로 올라가 버스가 다니는 것을 구경하고 주택가를 구경하며 여기가 언덕이구나 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초등학교를 바라보고 있을 무렵, 학원 수업이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학원을 가야 했는데...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어디고 또 학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더라. 수업할 시간은 다가오고 방법은 없어서 원장님께 전화해 물었다. "원장님, 제가 산책을 나왔는데 길을 못 찾겠어요. 길 좀 알려주세요." 나도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듣는 원장님도 웃었고, 나중에 만난 원장님은 더 웃었다. 그땐 길치인 걸 가볍게 여겼는지 산책이란 걸 아무 때나 했다, 감히.



수다를 떨면서 이 이야기를 하자 상대방이 글로 쓸 만큼 재밌는 소재라고 말했다. 이것이 글감이라고? 그만큼 독특한가 싶었다. 나에게는 일상인데.



연이어 두 가지의 소리를 들었다. '글을 써라'. 친구가 보낸 메시지와 길치가 글감이 될 수 있다는 소리. 어쩌면 그건 나에게 지금 글을 써 보라는 무언의 계시 아닐까.



브런치를 생각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언젠가는 써야지 하면서도 잘 안 써졌다. 블로그보다 무겁다는 느낌 탓이다.



백지를 볼 때마다 불안에 정신이 완전히 잠식되는 이 느낌을 영원히 안고 살다간 제 명에 가는 게 불가능하리라는 확신이 들기에. 그래서 요즘은 작업을 하기 전에 항상 내 자신에게 소리내서 묻는다.

오늘은 원고에 무슨 헛소리를 쓸까?

                                                                              (심너울,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 볼까)



블로그보다 헛소리를 적게 써야 한다는 압박이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 생긴다. 똑같은 백지인데 왜 이러는 건지. 심너울의 에세이를 읽는다. 그곳에 이런 백지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말이 쓰여있다. '오늘은 원고에 무슨 헛소리를 쓸까?' 나도 그런 생각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려봐야겠다.

헛소리를 오늘도 올리네, 이렇게.

작가의 이전글 이유가 뭐 있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