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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Aug 26. 2021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 마음이 내 맘에 남아...


학생이 내 강의실에서 나갔다가 돌아오질 않는다. 어느새 밤이 찾아와 강의실이 어둑해졌다. 나는 강의실 밖으로 나가 원장님을 뵈었는데 원장님께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날 다시 캄캄한 강의실로 넣었다. 나는 저항이랄 것도 없이 순순히 강의실로 들어갔고, 캄캄한 덕분에 쪽잠을 잤다.



자다 깼는데도 학생이 돌아오질 않았다. 강의실 밖으로 나가 학생을 보니 학생은 부원장님과 무언가에 대해 열심히 대화 중이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강의실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래도 혼자라서 강의 듣는 일을 그만둘 것 같았다. 그만두려면 그만두지 왜 저렇게 시간을 끌까. 심드렁하게 앉아서 학생을 기다리다 또 졸았다.



11시 30분. 그제야 학생은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원장님께서는 나에게 늦었으니 수업은 이만 하는 것으로 하고 퇴근하라고 했다. 늦었다. 10시도 아니고 11시 30분에 퇴근이라니. 버스 타고 집에 갈 일이 막막했다. 일단 버스를 잡아탔다. 그리고 갈아타려고 버스에서 내려 서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왔다.



"안녕하세요." 무미건조한 인사를 건네고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겠지 여기며 안전벨트를 맸다. 아무래도 택시인가 보다. "금빛공원까지 가면 되죠?" 묻는 아저씨의 말에 사실은 집까지 가면 좋은데 거기까지밖에 안 가네 하면서 마지못해 "네..."라고 답했다. 기사 아저씨는 인상이 좋았다.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건넸고 웃으면서 답했다. 밤에 거리를 보는 게 얼마 만인가. 골목들은 컴컴했고 세상은 고요했다. 그동안 버스 타고 다니면서 불빛에 취해 세상이 어두운 줄도 몰랐고 감상할 태도도 갖추지 못했다. 이참에 택시에 앉아 멍하니 세상을 바라봤다.



"여기 금빛공원이네요. 다 왔습니다." 기사 아저씨의 그 말에 아쉽다고 느끼며 내렸다. 이제 걸어서 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막막했다. 기사 아저씨는 차에서 내려 골목으로 뛰어갔다. 나는 빈 택시 앞에 서 있다가 원장님과 부원장님을 보았다. 원장님과 부원장님의 사업은 요새 쉽지 않은 모양이더라. 학원 말고 다른 가게가 그들에겐 있었는데, 그게 망한 모양이다. 어지러진 물건들과 텅 빈 가게. 그 앞에 서서 자신의 가게가 망한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꼴이라니. 씁쓸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체 서 있는 나도.



그때 내 눈에 맛 좋은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돗자리를 펴 바닥에 깔아놓은 음식들. 그리고 "이거 드셔 보세요. 드리려고 해 왔어요."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 음식을 입에 넣고 보니 보는 것만큼이나 맛이 좋았다. 다 먹자 기사 아저씨는 나에게 주소를 써 달라고 했다. '서울시 금천구...' 주소를 써 나가고 있는데 돗자리의 음식을 보고 사람들이 몰렸다. 음식은 아까보다 더 많아졌다. 사람들에겐 돈도 받고 주소도 받는 아저씨를 보며 나는 덤덤히 주소를 쓰고 나왔다.



기사 아저씨는 돈도 요구하지 않고 나에게 왜 맛있는 음식을 주었을까. 원래 가게 사람이라 방문 명단을 만드는 걸까. 의아했다. 그러나 이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나에게 돈도 받지 않은 채 데려다주고 먹이고... 그럴 수도 있다고.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 게 아니니 괜찮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꿈에서 깼다.



'그럴 수도 있다'라는 내 마음이 마음에 남았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은 처사다. 이것이 성장이라면 성장일 수 있겠다. 남에 대해서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험담했던 사람이 더 이상 밉지 않다. 생각해 보니 미워할 일이 아니더라. 장점을 바라보니 그 사람은 한없이 다정했고 친절했다. 그런데 왜 그동안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미워했을까. 지난날의 내 태도를 반성한다.

쫓아다니는 학생에 대해 생각한다. 불편하고 성가시다. 그러나 그 아이가 아니었던들 강사 생활하면서 누군가가 날 좋다고 말하는 일을 겪을 수 있었을까. 먼 훗날 나에게 이런 일도 있었다 이야기할 사건이 생기는 거다. 그러니 당장은 불편해도 싫어는 말자 다짐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그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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