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과 <오만과 편견>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내 머릿속엔 항상 두 가지의 답이 떠오른다. 하나는 <인셉션>, 하나는 <오만과 편견>.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걸 보니 영화를 자주 안 봐서 그런 것 같다. 이런 거 보면 영화도 좋아한다고 하기도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인셉션>은 꿈에 들어가 사기를 치는 내용이다. 내 기억에 의존하여 영화 내용을 말한다면, 사기를 치기 위해서 사기꾼들 중 한 명만 남고 나머지가 사기를 쳐야 하는 대상의 꿈에 들어간다. 거기서 사기꾼들은 대상이 아는 사람으로 변장하여 비밀번호를 알아내거나 열쇠를 훔치려고 하는데 만약 실패할 경우 거기에서 또 꿈에 들어간다. 대상을 재우고 사기꾼 중 한 명은 남아 나머지만 꿈과 연결돼 들어가는. 꿈에 또 꿈, 꿈에 또 꿈... 그것이 반복되는 영화다.
꿈에 들어간다는 설정이 신기했다. 그런 건 고전 소설에서나 있는 줄 알았는데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다니 말이다. 게다가 영상으로 보니 더 신선했다. <인셉션>에 꿈 설계자가 나오는데 그 설계자가 꿈을 설계할 때 도시가 위로 번쩍 들려지는 장면이 있다. 그걸 보고 나도 '와!' 했다. 꿈엔 자연스럽게 도시가 나오고 일상적인 공간들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설계를 해야 한다니, 게다가 상하좌우도 설정해서 설계해야 한다니. 아이디어도 놀라웠지만 그걸 영상으로 구현해 낸 것도 놀라웠다. 영화를 보고 흥분된 마음으로, 이 영화는 두 번 봐도 좋겠다고 한 기억이 난다.
다른 하나는 <오만과 편견>이다. 몇 년도의 배경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여자들의 사회적 진출이 적었을 당시다. 여자들이 옷을 입을 때 코르셋을 입고 부푼 치마를 입어야 하는 시대 말이다. 그 시대 속 둘째인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언니, 동생들과 다르게 책에 푹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른다. 산골 도시에 외지인이 들어서면 그것이 이슈화되는데, 이때 외지인이 부자라면 더 큰 이슈를 만들어낸다. 부자인 다아시와 빙리가 이 산골에 들어서게 되는데 빙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것으로 첫인상이 좋지만 다아시는 그렇지 못하다. 괴팍하고 불친절한 대명사다. 그런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만나는 이야기다. 둘 다 오만했고 편견이 가득해서 서로를 오해했던 이야기.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 소설과 똑같기 때문도 있지만 주인공이 예뻐서도 있다. 엘리자베스 역을 키이라 나이틀리가 하는데 첫째도 예쁘지만 둘째는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못할 정도로 예쁘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하는 표정과 말투가 생생하게 뇌리에 박힌다.
엘리자베스는 나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책을 좋아하고 '진실한' 사랑을 찾는 모습이 비슷하고 오만한 모습도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오만해지기 쉬운 걸까. 나만의 생각에 갇혀 남을 무시하는 나를 매번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점은 엘리자베스는 부당한 요구에 대해선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목사님과 결혼하길 바라지만 엘리자베스는 거부한다. 그리고 한밤중에 찾아와서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와 결혼할 생각도 말고 꼬실 생각도 하지 말라는 캐서린 공작의 말에 단호히 말한다. 남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않겠다고 그러니 거절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치는 엘리자베스는 나와 달랐다. 나는 쉽게 주눅 들었고 눈치 봤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땐 왜 그랬지 하는 모든 게 다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한 거였다. 주눅 들며 살고 싶지 않다. 그런 점에서 엘리자베스의 모든 것이 가슴이 아리기도 하고 내가 가야 할 지향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적다. 그러나 상상력을 넓혀주는 영화를 좋아하고 지향할 점을 보여주고 현실의 나를 보여주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건 내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 영화를 더 발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