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olpit Sep 10. 2021

편안한 것만 찾는 삼십 대

나 소박한 거 맞나?


학원 건물 내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냄새인지 몰랐다. 그러다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 다녀오는 순간 냄새의 정체를 알았다. 순대다. 옆자리 선생님에게 학원 건물에 순대 냄새가 난다고 말하자 아마 건물에 떡볶이집이 있어서 그런 걸 거라고 말했다. "배고프네요. 난 저녁에 순대랑 떡볶이만 있음 행복할 것 같아." 넋두리를 하다가 끝말에 이렇게 덧붙였다. "이렇게 소박한데..." 그랬더니 옆자리 선생님은 "누가 사치스럽다고 했어요?" 하며 묻더라.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고 자세히 설명할 순 없었다. 왜냐면 그건 내 속마음에 대한 답이었으니까.



나는 자주 내가 소박하다고 생각한다. 물건에 대해 소유하고픈 마음이 없어서 오히려 그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만 있으면 될 것 같아,라고 생각한 최근 나의 생각도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리거니와 욕심이 적은 탓도 있다. 엄마는 올해 나에게 계속 옷을 사라고 한다. 일부러 안 사는 건 아니다. 귀찮다고 여겼을 뿐이다. 게다가 여름까지는 일하느라, 또 개인 사정으로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옷을 구경할 새가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이 나면 잠을 잘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가을이 되자 그동안 없던 여유가 찾아오면서 엄마의 잔소리까지 더해졌다. 옷 사라, 옷 사라.



살이 찐 요즘, 내가 다시 살이 빠질 거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그럴 순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도 하지만 현재 살이 쪘으니 옷은 사기가 싫다. 옷을 고르는 순간이 되면 입을 옷이 없다 싶으면서도 낮이 되면 옷 사러 가고 싶지 않다. 욕망을 절제하는 기술도 여럿이다. 대신 가방과 신발은 다르다. 가방과 신발은 사이즈에 국한되지 않는다. 살이 쪘다고 해서 얘네들도 커질 필요는 없다. 그래서 오늘은 가방과 신발을 샀다.



가방은 에코백을 골랐다. 가격을 보면 이게 에코백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 그냥 천 가방이라 해야겠다. 나는 천 가방을 좋아한다. 책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나는, 가방이 꽤 무겁다. 책에다가 개인 소지품에다가 학생들 문제집까지 넣어 다니니 무거울 수밖에. 그런 나에게 가죽으로 된 가방을 들라는 건 어깨에 무리를 주라는 말과 같다. 책을 넣기에도 안성맞춤이고 무게도 가볍다 보니 매일 선택하는 것이 천 가방이다. 또 천 가방은 색도 다양해서 이 천이 헤지면 다른 색으로 교체하기도 쉽다. 싼 편에 속하다 보니 가방을 험하게 쓰는 나에게 딱이기도 하고.



신발은 방금 샀다. 과외를 가서 한 번에 벗고, 끝나고 돌아올 때 한 번에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사고 싶었다. 굽은 없어야 지하철에서 편할 듯해서 생각 끝에 슬립온을 샀다. 스니커즈는 지금 신고 있다. 그래서 피했고, 두꺼운 운동화는 약간 덥다. 플랫슈즈는 발이 아플 테니 이젠 싫어서 쉽게 신고 벗고 발도 편할 것 같은 슬립온 선택!



가방이나 신발이나 모두 나에게 편한 것들을 샀다. 20대에는 나에게 편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남들이 신고 매고 있으니 나도 그러면 어떨까 했을 뿐인데 어느새 이런 기준점이 생겼다. 이것은 나에게 불편하고 이것은 나에게 편한 것이라는. 옷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



( 이렇게 가방과 신발을 사 놓고선 소박한 거 맞나? 나 자신도 모르겠다, 나를.)

작가의 이전글 호감과 친밀감이 날 웃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