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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Sep 09. 2021

호감과 친밀감이 날 웃게 한다

정재승의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읽으며 웃음에 대해 논하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정재승의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다. 청소년들과 읽기 위해 선정한 것이라서, 무작정 청소년 책이라고 생각했다. 쉬워서 뻔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측과 다르게 흥미진진하다. 오늘 읽은 대목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웃음의 사회학'이라는 부분이다. 웃음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어느 학자는 뇌의 한 부분이 웃음을 담당한다고 했고, 어느 학자는 웃는 시늉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중 한 학자는 사람들이 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때문에 웃는 경우는 10~20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대개는 '그동안 어디 있었니?' 혹은 '만나서 반가워요'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가장 많이 웃는다는 것이다. 즉 친밀감이나 호감을 느끼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웃는 것이지, 농담을 주고받아야만 웃음이 넘치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1)



이상한 학생과 퇴근길에 계단에서 마주친 뒤로, 그것이 일부러인 듯 여겨지는 정황들이 이어져 옆자리 선생님과 같이 퇴근하기 시작했다.(단독으로 마주치는 건 무섭다. 따라올까 무섭고, 이야기를 또 들어야 한다는 것도 무섭다.) 옆자리 선생님과 건물 밖을 향하고 버스를 같이 타고 내리는 과정들은 생각보다 길다. 익숙해지면 문제가 없겠지만, 당분간은 어색해서 많이 웃고 많이 말할 예정이다. 오늘도 옆자리 선생님과 같이 퇴근했다. 옆자리 선생님은 오늘따라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나와 같이 지하철을 타시나 의문이 들던 그때, 옆자리 선생님은 화장실을 들른다며 인사를 건넸다. 나와 같이 타나, 즉 나를 좋아하나 착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순간 과거가 떠올랐다. 예전엔 설레었다. 나와 같이 가려고 일부러 화장실을 가는 것 같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설레서 그 시간을 더 끌고 싶었다. 그런 착각을 꽤 오랫동안 했다. 그런데 지금을 봐라. 웃음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설레지 않으며, 화장실을 간다는 데도 아무렇지 않은 거. 콩깍지가 벗겨진 것이겠지.



호감을 느끼는 상대와 웃음을 나누는 게 맞다. 이유 없이 웃음이 터지는 상황들을 보며 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상대를 좋아하나?' 자신에게 물은 적이 있다. 호감은 맞지만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호감이 아니면, 웃지도 않는다. 이상한 학생에게 절대 웃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오늘은 누구와 호감을 느꼈고 친밀감을 느꼈나. 나는 일할 때 가족 이외 사람과 유일하게 대화한다. 그래서 웃는 것도 그때 제일 크게 웃고, 제일 많이 웃는다. 그러다 보니 오늘은 여학생이 생각난다. 같이 수업을 듣던 학생이 안 와서 단독으로 수업을 받는 여학생과 나는, 웃음을 나누며 수업을 했다. 예전과는 다르다. 예전에는 어색해서 어쩔 줄 몰랐다면 지금은 나의 결점을 보여주면서도 편안하다. "진짜... 관형사, 부사를 설명해야겠지?" 물으며 그와 동시에 시계를 보며 끝날 시간이 다 되어 설명을 안 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여학생은 "해야죠!"라고 말하며 날 재촉했다. 예전 같았으면 눈치만 보고 있을 학생이었는데 말이다.



단독으로 학생을 수업하다 보면 단체로 할 때보다 훨씬 아이와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한다. 철저히 나의 기준에서 내가 낯을 가리지 않고 편안해졌다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아이를 편안하게 대하고, 우리의 관계를 편하게 대하는 것이 아이의 입장에서도 날 편하게 여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친밀감에 서로를 편하게 대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농담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웃었다.

오늘은 여학생과 친밀감을 쌓았고, 그것의 증명은 '웃음'이다. 웃음.






1)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어크로스,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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