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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Sep 14. 2021

현재를 얻은 시점에서

당신의 미래는 어떠합니까?


그렇기에 새로운 시작에 발맞춰 마음을 다잡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한 철학자의 가르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성찰과 결심은 인간만이 지닌 특징이 아니던가.

문제는 새해 결심이 일으키는 부작용에 있다. 마음의 작동에 예민한 사람들은 이를 알아차리고 일부러 새해 결심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루하루에 대해 결심을 할 뿐인다. (...)

새해 결심의 내용을 바꿔야 한다. 자기 중심적 결심에서 타인 중심적 결심으로, 마음에 관한 결심에서 행동에 관한 결심으로.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매년 무죄다.



최인철의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읽은 대목이다. 새해 결심을 하는 행동은 매우 훌륭하나 단점은 일부가 새해 결심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충실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자는 새해 결심의 내용만 바꿔야 할 뿐, 결심은 할 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가슴이 찔렸다. 나는 매일의 계획만을 세우다가 그것도 하지 않는다. 오늘을 그저 열심히 보내자고만 다짐할 뿐 '어떻게, 무엇을'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미래에 대한 생각도 없다.



미래에 내가 무엇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20대엔 언젠가 결혼을 하지 않을까 했고, 고등부를 가르치지 않을까 했다. 결혼은 안 됐고 고등부는 가르치고 있다. 인간관계가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있다. 더 이상의 목표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미래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난 현재를 얻었다. 현재 즉 그때그때 나는 충만하게 살고 싶고 충실하게 인생을 보내고 싶다.



오늘은 볕이 좋다. 목요일엔 비가 온다는데 아직 날이 멀어서 날씨가 이다지도 좋은 걸까. 바람도 불어와 이파리를 우수수 소리 나게 만들고 창문으로 바람이 하늘하늘 들어온다. 이런 날은 방에 앉아 있기가 싫다. 햇볕을 쬐러 거실로 나오고, 밖을 나간다. 밖에 나가 보니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여름철 내내 보지 못했던 꽃이다. 식물학자의 책을 읽던 중에 식물도 동물인 인간처럼 매 순간을 열심히 보낸다고 적힌 구절이 생각났다. 내 눈앞에 있는, 꽃을 피운 식물이 대단해 보인다. 나도 작년과는 꽤 달라졌다. 인간도 모르게 꽃을 피운 것처럼, 사람들 모르게 심지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나는 변하는 거겠지 싶었다. 구름이 뒤덮은 하늘을 봤다. 이렇게 많은 영역을 뒤덮은 건 처음이다. 구름이 시시각각 움직인다. 내 마음이 요동치듯 구름도 그런가 보다. 자연을 통해 배우는 게 많다. 책이 평화롭게 읽힌다. 이 평화를 올여름에 얼마나 바랐던가. 그것들을 되찾고 책이 평화롭게 읽히는 지금, 나는 행복을 만끽한다.



난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어떤 꿈도 없고 거기에 대한 흥미도 없으며 대비도 없다. 그래서 위태롭다. 그렇지만 현재를 살기에 불행하지 않다. 매 순간 감사하고 감탄한다. 미래를 잃고 현재를 얻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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