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심이 넓은 사람 그리고 나와 네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사람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왔다. 그러나 난 꿈 꾸지 않았다. 자신감이 없어서 임용고시에 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이면 언제든지 아이들 곁을 뛰쳐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선생님이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선생님이 된 게 아까워서 쉽게 나오지도 못할 것 같고, 아이들을 사랑해 줘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을 것 같다. 사랑하지 않는 순간에도 말이다. 나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시던 분에게 지금도 간간이 연락을 드린다. 선생님은 정말로 아이들을 사랑하신다. 한 번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그렇게 귀엽다고. 나 같으면 교실에서 먼지 나니까 그만 뛰어다니라고 할 텐데. 우리에게도 인자하신 선생님으로 기억되는데 중학교 아이들에게도 그 인지함을 뻗치시나 보다. 그래서 난 선생님이라면 으레 내가 겪은 선생님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자하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봐주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꿈꾸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인지함. 즉 이해의 넓음.
난 이해심이 넓지 않다. 넌 왜 그러니? 쟨 또 뭐야? 하는 말들이 속에서 튀어나온다. 오만하기도 하고 거만하기도 한 속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심화될 때는 그 학생을 그만 가르치고 싶어진다. 여기를 그만두면 가르치는 것도 끝이겠다 상상하면서. 내가 너무 괴로워서 그 해결법으로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모든 일에 허허 웃을 수 있는 사람.
아침에 모임을 하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는데 그중 가장 신기한 사람은 모임장이다. 허허허 웃는 투가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모든 걸 다 이해해서 그런 건지 혹은 무심한 것인지. 예민한 구석이라고는 없다. 처음엔 그것이 좋았는데 내가 화나는 순간에도 웃고 있는 모임장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다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점을 닮고 싶다. 언젠가 모임장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면 된다고. 좀스러워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모임장의 마음을 닮아 가고 싶다. 그럴 수 있다, 사람이면 다 그럴 수 있다, 그저 나와 다른 것이다 하면서.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나와 네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에 나는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으며 공감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기분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말들을 해 주고 위로해 주며 나날들을 보내왔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의문이 든다. 내가 남의 기분을 생각하고 추측한 것이니 정답은 영영 모르는 거 아닐까. 나와 남은 영원히 하나일 수 없다. 난 그저 그의 기분을 추측할 뿐이다. 내 기분이 맞춰서. 그런데 그것도 잘못일 때가 있다. 나만의 착각에 휩싸여 오답을 내리기도 일쑤다. 그러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나와 너는 다르다는 것을.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때 이해의 폭이 하나 더 넓어질 것이다. 오늘도 되새긴다. 나와 너는 다르니까 네가 말하지 않는 순간까지 난 모르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