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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Sep 16. 2021

나에게 할머니는 두 분 계신다

난 어떻게 살며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나에게 할머니는 두 분 계신다.


일단 친할머니부터 이야기해 보자. 친할머니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내 곁에 있었다. 기억이 그렇게 시작한다는 거지 진짜 내가 태어나면서 내 옆에 있었던 건 아니다. 할머니는 아들을 원했단다. 이미 딸 하나는 있으니 아들을 낳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딸인 내가 태어나니 돌잔치도 못 하게 성질을 부리셨다고 한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아서 분노는 일지 않았지만 괴팍한 시어머니였음은 인정한다. 엄마는 어떻게 그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지. 아무튼 할머니는 내 어린 기억 속에 항상 있다. 할머니네 집에서 우리 집은 굉장히 가까웠다고 한다. 골목 하나 꺾으면 닿을. 그런데 할머니 집을 나오다가 우리 집에 오는 길을 잊어, 길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누가 나를 발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파출소에서 울고 있었단 기억만 또렷하다. 이사를 한번 가고, 할머니는 큰아버지와 합쳤다. 그런데 짐만 합쳤다. 몸은 우리 집에 와 계시고 잠도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텔레비전도 우리 집에서 보는데, 짐만 거기 있었다. 할머니 방이라고 하는 게 거기 있었다. 할머니는 언니와 나랑 한 방을 썼다. 할머니의 예쁨을 많이 받았다. "용미야" 이렇게 부르면 할머니였다. 그럼 난 항상 뛰어갔고. 할머니가 내 동생은 남자였음 좋겠다고 노래를 불러서 나도 그렇다고 말했더니 진짜 아들이 태어났다. 할머니는 더없이 기뻐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놀러 갔다 온 사이에 쓰러지셨다. 제일 먼저 발견한 것도 나다. 난 할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내 생각한다. 얼마나 그렇게 쓰러져 계셨을까. 마지막엔 무엇을 생각하고 부르짖었을까. 그렇게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할머니를 신경 쓰느라 또 다른 할머니를 잊었다. 그분은 상주에 계신 외할머니였다. 왕래도 없어서 난 할머니가 몇 살인지도 까마득히 잊었다. 그러다가 올해 아흔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너무 정정한 그 모습이 아흔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정한 할머니는 서울살이를 답답해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지금까지 혼자 지내시는데 자주 이모가 들여다본단다. 그런 외할머니가 작년에 서울에 올라오셨다. 할머니 입장에선 이모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것이었고 그런 할머니를 엄마가 잠시 모셨다. 할머니는 괜찮은 듯 보이다가도 혼자 묵묵히... 우셨다. 그리고 또 괜찮은 척을 하고. 할머니와 지낸 며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야야 왜 이래 말랐니." 하며 엄마 등을 쓰다듬는 것과 일어서려는 엄마를 말리며 나에게 "네가 좀 해라." 낮게 말하시던 모습이다. 난 엄마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좋았다. 딸이니까 아끼고 사랑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나는 엄마를 너무나도 하찮게 대했는데 할머니는 귀하디 귀하게 다뤘다. 나도 귀하디 귀한 딸을 귀하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할머니처럼.



할머니는 지금도 혼자 사신다. 자주 이모가 들여다보고, 자주 막내 이모를 생각하실 것이며, 가끔 엄마의 전화에 괜찮은 척 허허허 웃으실 거다. 짠하면서도 놀라운 할머니.



할머니를 생각하며 우리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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