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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쑤 Nov 17. 2021

960원

새벽 출근하는 교대 근무자의 잔재미

교대근무가 체질인 사람이 있는 반면에 불규칙적인 출근시간으로 인해 소위 짬이라는 것과 별개로 찾아오는 불안함이 매번 스트레스인 사람도 있다. 어째서 컨시어지는 호텔 안에서만 존재할  있단 말이냐! 라운 건 교대근무도 하다 보면 취향이라는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보다 새벽에 잠드는 사람들은 오전 7시까지 출근하는 오전조보다 오후 2시까지 출근하는 오후조를  선호한다. 평범한 직장인들과 비슷한 바이오 리듬을 유지하며 퇴근 후의 여유가 중요했던 나는 오전조가 편했 와중에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기꺼이 새벽 출근을 택했다.


새벽 4시 30분. 성공한 사람들의 기상 시간처럼 보이는 이 이른 시간부터 오전조의 생존이 시작된다. 도어 투 도어 60분이 걸리는 새벽 출근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버스와 지하철을 각각 한 번씩 타야 했다. 겨울이면 더 고된 새벽 출근이었지만, 그래도 새벽 출근의 잔재미였던 버스 조조할인이 있었다. 반쯤 뜬 노란 해와 노란 글씨로 ‘조조할인’이 크게 적힌 카드 리더기 화면에 카드를 대면 ‘삐빅’ 소리와 함께 조조할인을 받는다. 이게 바로 새벽에 출근하는 맛이자 버스 타는 맛이지! 첫차 운행 시간부터 오전 6시 30분 이전에 탑승하는 승객에게 적용되는 버스 조조할인은 무려 960원에 버스를 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요즘에는 천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데, 천 원을 내고도 40원이 남는 일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지구 상에서 가장 불쌍한 유일한 새벽 출근러일 것 같지만,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먼 곳에서부터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온다. 마취총이라도 맞은 듯 거의 기절한 채 빨랫감처럼 널려 잠든 사람들, 부지런히 새벽 등산 가는 어르신들, 새벽까지 과음하고 차내에서 길게 뻗어버린 대학생들까지. 지금 출근하는 건지, 퇴근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배차 간격도 넓은 새벽에는 정해진 탑승 시간에 슬라이드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새벽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나와 같은 시간에 차를 기다리고, 같은 칸에 탑승하고, 심지어  같은 자리에 앉는 같은 사람들. 매일 보는 얼굴에 내적 친분은 이미 머리 끝까지 쌓였지만, 실제로 말은 절대 걸지 않는 출근 메이트들이다. 누군가 타지 않을 때면 때론 아쉬워하기도 하는  오묘한 사이 덕분에 조조할인받은 새벽이 조금  외로웠던  같기도 하다.


그 사이 호텔 근처로 이사도 하고 까만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되었고 그 덕분에 출근 시간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서 도어 투 도어 60분이 걸리던 새벽 출근도 잦아들었다. 그 이후로는 조조할인을 받은 적이 없다. 더는 새벽부터 집을 나서지 않게 되었지만,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함께 조조할인을 받던 새벽 출근 동지들, 여전히 어디선가 새벽을 잘 이겨내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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