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새로운 고민과 함께
2025.10.21. 화 9:40
충무로 수잔나의 아침이라는 카페에서 오중이와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하루 종일 우리가 나눈 대화가 흥미로워서 다이어리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하나씩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펜촉 굵기
좆같은 사회생활
건강 염려
자산 증식
결혼?
가족 이야기
··· 인간의 삶은 저주다 ···
양자역학 주식?
보통은 우리가 함께 했던 낭랑 18세 시절엔 하기 힘든 이야기로 채웠구먼. 그만큼 우리의 삶이 많이 변화했다는 의미겠구나. 10년 뒤엔 대화 주제가 어떻게 변해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다이어리를 쓸 때 가장 좋아하는 펜의 두께는 0.5mm로 그것보다 굵어지면 글씨가 망가져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영점오미리에 젤펜인 경우 딱 좋아하는 필기감과 글씨가 만나서 글이 아주 예쁘게 써진다. 친구는 굵은 펜이 좋단다. 원래 쓰던 0.5mm 펜 잉크가 다 닳아서 사두었던 리필로 교체를 했는데, 펜 촉이 낡았는지 잉크가 만년필처럼 새어 나온다. 조절도 잘 안 되고 그냥 너무 두껍게 써져서 실제로 그 이후로는 다이어리를 거의 쓰지 않아 버렸다. (물론 삶이 퍽퍽할 때 오히려 다이어리를 안 쓰게 되는데, 공연 준비 기간 동안 너무 힘들었어서 그때부터 더욱 거의 안 쓰게 됐다) 원래는 12월 초 정도에 새로운 다이어리로 갈아타게 되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왠지 모르겠지만 11월, 이제는 10월, 더 빨리 한 해를 정리하고 싶어진다.
친구와 만나서 우리 계획을 점검한 덕에 내가 올해 내내 사랑니 발치를 미루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했다. 나는 턱관절장애를 꽤 오랫동안 앓았고, 그 사이에 하관 비대칭이 많이 진행돼서 입도 벌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었다. 지금은 그것보단 호전됐지만.. 2년 전쯤인가 스플린트 장치를 끼기 시작했는데, 유명하다는 치과로 찾아가니 그곳이 일산이라 조금씩 다니다가 너무 멀어 이제는 안 가는 지경이 되었다. 미뤄뒀던 것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오늘 생각난 김에 사랑니와 턱관절 양쪽 모두의 치과 예약을 해야겠다. 젊을 때 관리해야지 늙어서 고생 안 하겠지 싶은데 자꾸만 게을러진다.
건강 염려도 그런 면에서 대화가 이어졌겠지. 친구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매일 사소한 통증이 거대한 병으로 이어지는 환자들을 마주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로서는 불안함이 들더라. 워낙에도 불안함에 잠식되어 사는 삶이었지만 할머니가 다친 후로는 그 불안이 강해져서 나 원 참. 올해가 가기 전에 산부인과 검진을 더욱 면밀하게 받고 유방암 검사도 해야겠구나. 갑자기 건설적이게 되는 10월의 끝자락이다. 뇌 mri와 복부 ct, 심전도검사, 가다실19 접종, 위·대장 내시경, 꾸준한 건강검진.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해본 것들이다. 엄마가 아침부터 주식 얘기를 계속해서 길을 잃었다. 산전검사 지원금도 신청해 두었고, 유방암 검사도 지원받을 수 있다니 오늘 전화를 해봐야겠다. 미리 해놔서 나쁠 건 없는 것 같다. 친구와 대화를 해보니 너무 불안해하는 것도 상담을 통해서 개선할 수 있다 하니, 올해는 반드시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야겠다.
아침부터 방에 드나든 인원이 많아서 이미 잠도 다 깨버렸고 갑자기 생각이 턱 막혀버렸다. 어디서부터 뭘 생각해야 하나. 그냥 당장엔 오늘 런지를 시작해야겠다는 것 말고 밖엔. 아, 유방암 검사 지원받을 수 있나 전화도 해봐야겠다. 할머니가 보도블록에 심하게 걸려 넘어졌기 때문에 시청에 민원을 넣는 일이나 병원 관련된 골치 아픈 일을 처리하는 건 엄마. 엄마는 이런 일처리에 선수다. 글을 쓰다 말고 경기도 유방암 검진 지원사업팀에 전화를 해봤다. 오늘 아침엔 여러모로 산만하다. 20대는 국가검진에 유방암이 필수로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유방암 검진을 받으려면 7만 원 이상의 비용을 내야 하는데, 현재 경기도 여성은 본인부담금 3천 원만 지불하면 해당 사업을 실시하는 의료원에서 유방암 검진을 받을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젊은이가 암에 걸린다. 예방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당장 가볼까? 충동적으로 굴어봐야겠다.
확실히 20대 초반과는 다른 삶의 무게가 나를 누른다. 남들이 1억을 다 모아서, 남들이 결혼을 다 해서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이건 수억 년 동안 인간이 쌓아온 데이터다. 통계의 결괏값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걱정 없이 살았다 한들(생각해 보면 좀 늦게 무게감이 찾아온 것 같다) 결국에는 다른 삶의 무게와 방향이 생긴다는 것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똑같이 살 수는 없다는 것이. 인간 역사의 진리구나.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피하고 싶다면 어디론가 떠나야겠지? 도피해야겠지? 그러나 지금의 나는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부터 천천히 해야지.
2018년 지금과는 다른 삶의 무게 때문에, 갓 청년이 된 내가 느끼는 삶의 무료함 때문에 파주 지혜의 숲에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내가, 그렇지만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랐던 내가 충동적으로 파주행을 택한 날의 자그마한 일기다. 7년 전의 나는 홀로 무언가를 해내는 게 너무 두려웠고, 그래서 살을 에는 겨울날 파주 길거리에서 마늘빵을 덜덜 떨며 뜯어먹었다. 인태기 속에서 무엇을 하는 어른이 되어야 할지 헤매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니 7년. 왜 지금이 2028년 같지) 나는 훌쩍훌쩍 혼자 여행도 떠나고 이제 식당에서 혼밥 정도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은 혼밥이 더 좋다. 무엇을 더욱 탐구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다만,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을 했고 또 하고자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어른이 되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다. 조금씩 기록하는 것의 힘을 지금 방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느낀다.
내가 어제 친구와 했던 고민: 펜촉 굵기(?), 좆같은 사회생활, 건강 염려, 자산 증식, 결혼, 가족, 양자역학 주식(?) 이것들이 10년 뒤에는 나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와 있을까? 시간이라는 게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구나. 그때 내 가족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전부 나와 여전히 함께 있을까? 나에게 어떤 새로운 인연이 찾아올까? 오늘 가야 할 레슨을 전부 취소했다. 마음이 심란해서, 그리고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오늘은 집에서 차분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엄마와 함께 할머니를 돕고, 엄마도 돕고. 글도 진득하게 한 번 써보고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야겠다. 내일모레면 난 오사카에 있을 것이다.
마음이 힘들었던 순간 읽었던 책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는다. 비록 내용은 휘발되었을지라도.
20대 초반, 택배 상자를 뜯는 엄마의 가위로 스스로를 찌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던 파릇한 청년 엄 씨의 곁에 있어줬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故백세희 작가님의 명복을 빈다.
삶은 저주라 했지 어제의 우리가.
그런데 저주라면 너무 슬프잖아.
삶이 짧다면 축복처럼 살아야 하려나.
그 날. 파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