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든다, 눈물도 난다, 두렵다, 아니 안 두렵다
2025.10.20 9:42
오랜만에 살짝 또렷한 채로 쓰는 모닝페이지. 오랜만에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다시 읽었는데, 이런. 모닝페이지는 처음 8주간은 나도 되돌아보면 안 되고 (물론 나는 안 보고 있지만) 남들에겐 절대 보여주면 안 된다고 한다. 아이고, 전제부터 내가 틀렸군. 그런데 이미 나는 내 모닝페이지를 남들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고 쓰기 시작했는걸. 이건 나만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음적인 면이 있다는 것. 남들이 언제든 내 민낯을 내 알몸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에서. 이 모닝페이지는 말 그대로 내 쌩얼이자 내 나체다. 아침에 눈 비비며 쓰면 어떤 말을 쓰는지도 모르니까, 나는 되돌아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니까.
오늘부터 내 글이 사랑받을지 정확히 말하면 '내 모닝페이지'가 사랑받을지 고민하는 일 따위에는 집중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부터 <아티스트 웨이>의 12주간의 아티스트 데이트를 착실하게 이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안의 창조성이 바닥난 것 같아서. 하나씩 조금씩 꺼내보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2025년 한 해 동안 운이 좋게 공연을 많이 했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연극 <파우스트: 코미디 나잇> 그리고 최근엔 뮤지컬 <온달과 온달샘>까지 나는 무대 위에서 너무 행복했고 관객분들께 사랑받았다.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와 파우스트를 거쳐가는 동안엔 내가 주역으로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무척 고된 고민의 터널을 지났다. 온달샘에서는 주역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멀티로서 수행하면서도 연기적으로 잘 표현해 내는 일이 또한 역시 고됐다. 내가 창조적인 일을 안 해왔다고 할 순 없으나 작품에 한정된 내 창조력이 뻗어나가질 못 하고 내 안에서 썩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창조력을 방해하는 인물도 있었고, 그 인물이 내가 되기도 했다. 나를 방해하는 자. 여기서 지워버린다.
예술가라는 존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첫 번째 후원이란다.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의 후원을 말한다. 이렇게 생각했을 땐 나는 '후원'의 측면에서도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 물론 내가 키가 작아서 캐릭터가 한정적이다, 너는 정극 하면 망한다.(한 선배님이) 너에겐 실력과 매력이 있어? 난 잘 모르겠는데(내 공연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촌언니가)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답시고 나의 예술적 성장을 방해하고자 하는 말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나를 후원해 줬다. 내가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유명해지겠다는 목표를 세운 적은 없다. 그냥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라서 이걸 공연으로, 글로, 사진으로, 이제는 동영상까지 목표로. 그냥 보여주고 싶다. 드러내고 싶다. 그걸 봐주는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면 너무나 감사하겠지만.
결국엔 그저께 심하게 넘어졌던 할머니가 어깨 완전 탈골이란 걸 알게 됐다. 일요일에 여는 병원을 찾아갔더니만 의사가 그냥 큰 병원 가라고만 했다. 할머니는 집에 도로 와서는 계속 너무 고통스러워했고 이미 지남력이 심하게 낮아진 탓에 같은 말을 반복해 엄마는 이성을 잃었다. 그대로 월요일 그니까 오늘 아침 다니던 종합병원에 가려고 했으나 참지 못 하고 진통제라도 놔주자,라는 마음으로 일요일 낮 종합병원으로 다시 갔다. 의사가 없어서 걱정이었으나 천운으로 외부에 계신 의사가 병원으로 급히 와서 할머니의 어깨를 맞춰주셨다. 완전 탈골이 되어 수술적 치료가 필요해 보이나, 불가능해 보이나 일단 맞춰보자고. 그리고 기적처럼 어깨를 넣어주셨다. 오늘 이제 그 어깨가 잘 들어갔는지, 근육과 인대 손상은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남았다. 이런 의사가 참 의사구나. 이런 은인을 만나야 하는구나. 갑자기 할머니 이야기 하려다가 말이 길어졌다. 아무튼 이 할머니는 다치기 직전에 나를 위해 뜬 목도리가 완성돼서 다행이라는 말을 또 열 번이 넘게 반복했다. 다 뜨고 다쳐서 다행이다, 하나님. 하나님.
오늘은 나를 사랑으로 후원해 주는 이들을 떠올려보자. 갑자기 내가 뮤지컬을 한다고 했을 때 당황했던 엄마 아빠 표정이 선명하다. 하지만 지금 아빠는 밖에 나가서 내가 뮤지컬 배우라고 자랑을 한단다. 엄마는 회사 사람과 친구들을 전부 이끌고 내 공연을 여섯 번이나 봤다. 대구에 뮤지컬 배우겠다고 유학했을 때 그들은 내 이사와 내 생일과 내 공연을 위해 연고도 없는 대구 영주 밀양에 왕복을 몇 번이나 한 줄 모른다. 나를 후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데뷔 무대의 기억도 선명하다. J가 울산까지 꽃다발을 들고, 회사 휴가를 내고 찾아와 줬다. 우리는 공연이 끝난 후 울산역으로 가는 길 어떤 개천을 함께 걸었다. 왜 이렇게 나를 사랑해 줄까? 나를 왜 후원해 줄까? 내 친구들은 내 공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언제나 그들의 양손은 무겁다. 하물며 내가 약간 부끄럽게 생각했던 연극마저 보러 와줬다. 스스로가 더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만 나를 하찮게 여기는 게 아닌가.
어제는 완전히 내 감정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늘 이별이 두려운 사람이었고 그 두려움에 잠도 못 자고(물론 오늘 새벽도 울다 잠들었지만) 괴로워하는 날들이 많았다. 가끔은 낯간지럽지만 부모님과 아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내 고민에 대해 털어놓았다. 내가 떠나보내길 두려워하는 이들은 모두가 나의 후원자. 나는 여전히 두렵다. 그래서 <아티스트 웨이>를 다시 꺼내 들었다. 나에게 집중하자. 지금 두려움과 슬픔에 잠식되어 있는 나의 창조성을 끄집어내자. 정신을 차려보려고 한다.
찰싹, 찰싹
스스로 뺨을 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