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아침의 생각 조각들
2025.10.23. 목 7:23
무슨 말을 써야 하나. 모닝페이지가 진짜 내 창조성을 위해 도움이 되는 건 맞을까. 누구는 모닝페이지를 쓴 지 일주일째부터 미루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나. 그런데 난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같이 살기로 했던 순간부터 더 그랬다. 할머니는 예전의 할머니가 아니고 고집과 자존심이 강하게 남은 치매 초기 할머니였다. 걷는 것도 위태로워서 자꾸만 넘어지고 이제는 정말 크게 넘어져서 어깨 완전 탈구가 된 이후 더욱더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어떤 사람에게 모닝페이지가 이로운가? 모두에게? 오늘은 쓰면서도 그 효능을 의심해 본다. 이걸 쓴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는 거야? 일단 오늘은 4박 5일 예정이 되어있었던 오사카 교토 여행을 떠나는 날. 여행을 가는 날 아침까지도 짐을 미처 다 싸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다. 피치 항공 기내수화물 7kg 제한. 한여름 상하이 홍콩에 다녀왔을 때도 7kg 제한이었는데, 그땐 여름이라 그런가 옷이 가벼워 옷 이외의 짐이나 기념품 같은 것들을 꽉꽉 채워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옷이 두꺼워지니 몇 장 챙기지도 않았는데 금방 5kg이 넘어버린다.
언니를 위한 간식을 사 와야 하는데. 여행을 떠나면서도 훌훌 버리지를 못 한다. 왜 늘 여행을 떠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사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어떤 여행의 특별함 때문일까? 한때 흥미 있는 주제가 생기면 동네 도서관에 들러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쌓아놓고 읽는 것에 취미를 들인 적이 잠깐 있었다. 요즘은 할머니와 엄마, 아빠, 이모, 언니,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도대체 인간들은 왜 그럴까 인간의 마음은 어떤 걸까, 개인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데 이 개인개인이 저마다 복잡하니 인간은 무엇일까 너무 궁금해진다. 심리학에 관련한 책을 좀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내 인생 데이터에 따르면 한 두 권 정도 읽으면 난 심리학 책을 다 읽은 양 배가 부를 것이 뻔하긴 하지만.
오늘부턴 다시 피임약을 복용한다. 4개월 정도 복용하다 다 먹은 후로 산부인과에 가지 못해 잠시 끊었다가 어제 다시 병원에 들렀다. 청소년기부터 지긋지긋한 질염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 전엔 보름이 넘도록 부정출혈을 했다. 매년 자궁경부암 검진 때 자궁경부이형성증 진단을 받으니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다. 이렇게 산부인과와 친하게 지내는데, 설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 아무튼. 피임약을 다시 먹기 시작하고, 나는 복용 시간을 매일 오전 9시로 할지 8시 반으로 할지 고민이다. 이미 한 번 끊긴 거 새로 시간을 설정할까. 아침을 조금 더 일찍 깨울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겠다. 아홉 시로 맞춰 놓은 알람을 매일 오전 여덟 시 반으로 변경해야겠다.
아, 배고프다. 할머니가 나에게 10만 원을 툭 던져주고 간다. 분명히 20만 원을 줬었는데. 어제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망상 증세를 보았다. 엄마와 나는 처음 그 상황을 맞닥뜨려 당황하고 흥분하고 말았다. 특히 엄마는 '엄마 미쳤어' 라며 울컥한 표정으로 고함을 마구 질렀다.
공연장 바깥으로 나갔는데 000 씨가 문 앞에 혼자 서있더라고. 그러더니 배가 고프다면서 배를 막 문질러. 그래서 '시장하세요?' 이렇게 물어봤지. 그렇다길래 어디 음식 맛있게 하는 데가 있냐 물어보니 저 건너에 국숫집이 있대. 그래서 같이 국수를 먹으러 갔어. 다 먹고 나선 나한테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도 했잖아. 내가 뭐 그 동네를 알어? 모르니까 맛있다는 데 있다 해서 따라나섰지.
아니. 분명 000 씨는 나와 함께 공연을 했어. 그리고 할머니는 공연장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다그치자 할머니는 밤새 분노와 억울함에 얼굴이 시뻘게져 잠을 제대로 이루질 못 했다. 아직 자기 기억력은 변함이 없다고, 자기를 바보 취급 한다고. 그러더니 본인이 맞아 그래 나는 바보고 치매 환자라며 스스로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 큰일이구나. 이제 우리는 치매 망상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해 확실히 알고 대처해야겠구나. 정신이 들면서도 할머니 앞에서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지금도 용돈을 던져주고 가는 할머니에게 왜 화가 나는 걸까. 그러면서도 왜 너무 불쌍해서 슬퍼지는 걸까. 할머니는 어떻게 공연장에서 몇 번 마주친 연예인에 관해 저렇게 자세한 기억을 가지게 되었을까? 함께 밥을 먹은 기억.
엄마와 높은 언쟁을 벌이다 화에 못 이겨 방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한참을 누워서 또 생각을 했나 보더라. 방에 들어가 보니 이런 말을 다시 한다.
그 집 이름이 진주집이었어. 그래서 내가 사장님한테 '진주에서 오신 분이에요?' 이렇게 물어봤어. 왜 다들 내 말은 아니라고 해. 그 사람은 바쁜 사람이니까 기억이 안 나나보다. 그런데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거든.
이제는 식당 이름까지 기억을 한다.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한 시간 반 뒤 김포공항으로 출발한다.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어젯밤의 충격으로 쉽사리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턱관절장애와 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인생의 괴로움을 동반한 예술인이 역작을 만들어낸 과거 역사들을 되짚어본다. 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만약 계시다면 지금 이 순간을 나에게 주신 것일까. 이 시간을 이겨내면 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무언가 남겨야겠다 생각한다. 맨날 생각만 하고 있긴 하다. 할머니가 교회에 못 간지 한참이 됐는데,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던 걸까.
우선 안전하게 여행을 해보자. 이번엔 일본 모기에 물리지 말자. 가족 일도 현실이라면 내 여행도 나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이 현실을 즐기자, 잠시 잊고. (그래도 오디션에 관한 것은 계속 기억해야지. 여행에서 돌아오면 바로 오디션 영상 제출. 마지막으로 기한 다시 점검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