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인생에 관해
2025.10.24. 금 7:48
신오사카에서 오카야마로 향하는 히카리 열차 안. 이미 말똥말똥한 상태에서 쓰는 모닝페이지. 45분 정도 오카야마로 이동한 후에 열차를 환승해 다카마쓰로 가는 길. 어서 마린호의 바닷길이 보고 싶다. 눈을 살짝 붙여보려고 했으나 순간 8:30에 복용해야 하는 피임약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 눈을 떴다. 젠장 이틀짼데. 오늘 밤에 잊지 않고 늦게나마 먹어야겠다.
일본 바다를 옆에 두고 달리는 열차 안. 아파트가 많이 안 보이네. 아파트가 제아무리 혁신적인 현대 도시의 주거 형태이자 건축 역사상 위대한 발명이라 해도 나는 다닥다닥 개성 없이 붙어있는 아파트 단지들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답답하다. 아파트에 살게 된 지 4년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 꿈의 집은 아파트가 아니다. (물론 무척 편하다) 더이상 그만 지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줄어든다던데 왜 이렇게 집을 많이 지을까? 한 번에 몇 천 세대씩.
일본 열차에선 한국어 안내음성이 안 나오네. 오사카에 연간 방문하는 한국인이 몇 명인데. (몇 명일까) 여행을 왔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난 역사에 대해 떠올려 본다. 연쇄작용 같은 거다. 신오사카에서 30분 정도를 달려오니 금세 시골길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오늘은 사누키 우동의 본고장인 다카마쓰로 간다. 자전거 타고 다니기 나쁘지 않은 날씨다. 어제 아침에 라면을 먹고, 공항에서 떡볶이를 먹고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고 오늘은 하루종일 우동을 먹을 거다. 이건 뭐 탄수화물 중독이라 할 수 있겠다. 퉁퉁 불어서 돌아가겠구나.
이른 아침까지만 해도 복잡한 일본 지하철 내에서 길을 찾느라 뭔가 생각할 정신도 없이 시간이 흘렀는데, 막상 열차에서 앉아있길 시작하니 눈에 밟히는 것들이 많다. 내 눈에서 멀어지고나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내가 더이상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할머니 팔이 한 번 더 빠졌다. 한 번만 더 빠지면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사람이 어떻게 어깨를 안 움직일 수 있나. 더군다나 고집 세고 일반적 논리로는 소통이 쉽지 않은 89세 노모인데. 아파서 자꾸만 어깨를 주무르고 답답하니 움직이려 한다. 앞으로 약 나흘간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어젯밤엔 처음으로 할머니 대신 기도한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다가 울었다. 그래도 할 건 다 했다. 저녁으로 한 노부부가 만들어주신 쿠시카츠 코스 요리를 먹고 욕장에서 시원하게 몸도 담갔다. 이제는 더이상 남들 다 가는 곳, 남들 다 하는 것에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물론 해보면 또 좋겠지, 그런데 안 가도 아쉽지는 않다. 이젠 뭐든지 내가 가는 길이라 해도 내 영역 밖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오늘 이 길을 선택한 것도, 이 곳에 온 것도, 이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모두가 내 의지였지만 한편으론 모두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흐르다 보니 이렇게 흘러오게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생을 주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이다.
엄마가 갑자기 많이 늙고있는 것도 (염색을 안 하고있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걸까. 하지만 아빠는 염색늘 하지 않아도 그렇지 않는걸) 내가 주관할 수 없는 일이려나. 이럴 땐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하다. 우선 오늘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아주 잠시는 잊어보고 싶다. 그치만 결국 떠오르겠지.
오늘 하루는 또 어떤 하루가 되려나.
오카야마에 도착했다.
사진은 히카리 열차를 타고 신오사카를 벗어나며.
신오사카 도시도 아파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