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미래? 일단 다시 시작

미루기를 그만하려는 나에게

by 엄달님

2025.10.30. 목 9:03


여행을 하는 동안 모닝페이지를 못 썼다. 재미있는 일이 많았는데, 그건 모닝페이지가 아니라 여행기로 따로 올려야겠다. 어떤 글을 써야지 읽는 사람들이 즐거워할까, 아니면 공감해 줄까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들긴 한다. 이번 여행은 많이 헤매는 한 편으로도 좋았다. 좋은 사람과 있다면 헤매도, 헤매다가 엉엉 울어도 결국에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겠다. 교토역에서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너무 어려운 일본 교통에, 추가금을 물게 된 상황에 억울했고 현금을 털어야 하는 것도 너무 아까웠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었을법한 일인데 그냥 지나치는 게 어려웠다.


여행 중 턱관절이 다시 망가졌다. 치과에 가지 않은 채 오랫동안 스플린트 장치를 착용한 게 문제였나 보다. 나는 오랫동안 턱관절장애를 앓고 있다. 아래턱이 작은 것도 이유지만 씹은 면도 좋지 않게 발달했고, 전체적으로 비대칭이다. 나는 내 비대칭 얼굴과 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턱이 안 좋은 이유도 몸이 비대칭이니까 틀어진 것도 이유지 않나 싶다. (물론 나는 그렇게 타고난 것 같다고 하셨지만 20대부터 턱관절에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그래서 오랜만에 치과에 갔다. 내가 가는 턱관절 전문 치과는 일산에 있어서 우리 집에서는 정반대다. 추천으로 갔는데 너무 멀어서 안 가게 되다 보니 일 년이 넘은 줄도 몰랐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버린다면 더 소중하게 쓸걸. 무섭기도 했다. 그 사이 턱관절 진료비가 만 원에서 만 오천 원으로 올랐다. 뭐든지 올라버리는 것도 무섭다. 나는 돈을 못 벌고 있는데, 물가는 점점 오르니 돈 쓰는 게 어려워진다. 이 사실을 부모님이 생각하면 속상하겠지만, 나는 대기만성형이라서 전혀 문제가 없다. 물론 돈을 어떻게 벌까 하는 데에 관심은 많지만 과감함은 없어서 크게 돈 벌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집에 오랜만에 언니가 내가 없이도 아침 분위기가 시끌시끌하다. 너무 좋다. 다들 주식 얘기 하는 게 들려서 나도 내 주식 창을 한 번 펼쳐봤다가 글로 돌아왔다. 이제 일상 시작이다. 처음 뮤지컬을 시작할 때 내가 스물아홉 살 때까지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하면 단호하게 포기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었다. 그러나 스물여덟 인 지금, 난 뭔가 하고 있다. 아직 포기할 순 없을 것 같다. 지금에서 새로운 목표를 하나 세워본다. 서른두 살까지 내가 이 일로 밥벌이를 못 한다면 포기는 절대 못 하지만, 꼭 다른 직업을 하나 제대로 삼겠다고. 지금도 한국어 강사 일이나 돈 들어오는 것들은 틈틈이 하고 있지만 제대로. 그렇다면 사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겠다. 그래서 요즘 부쩍 관심이 많아진 직업이 성우다. 쉽게 될 수 있겠다 생각한 게 아니라,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흥미가 생겼다. 성우도 결국엔 연기해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그것도 목소리로만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그러려면 꾸준해야겠지. 모닝페이지도 썼다 안 썼다 하는데, 휴. 아 아니지. 지워버리자 내 안의 방해자.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가 없다. 돈을 어떻게 벌까에 대한 궁리를 하지만 결국 오랫동안 갈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겠지. 하지만 돈을 바라보고 이 길을 가지는 않겠다. 밥벌이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돈을 목표로 삼지 않겠다. 내 목표는 넷플릭스 드라마에 나오는 것! 그리고 <어쩌면 해피엔딩> 같은 한국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 서는 것! 언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해외에서 공연하는 것! 중화권에서 공연하고 싶단 생각도 많이 했고 그들의 연극 문화도 배워보고 싶다. 조금 느리더라도 내 길을 가자.


나는 살면서 '인생에서 가장 친구'가 없다는 생각에 종종 우울함에 빠지곤 했지만 사실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연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속으론 우리 언니다. 그래서 미울 때도 있지만 너무너무 사랑하는 내 친구다. 내가 동생이 아닌 언니였다면 생각이 달랐으려나? 언니랑은 6살 터울이라서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지 못해서 청소년기 언니와의 추억이 두텁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니는 늘 내 곁에 든든하게 떠나지 않고 있었던 지원군이었다. 내가 윗 학년 언니들한테 괴롭힘 당할 때도 고등학생이던 언니가 그들에게 전화를 해 따끔하게 혼내주기도 했다. 그때 언니는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고3이었다. 고3이 야자실에서 나와 중학교 1학년 애들한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없기도, 고맙기도 하다.


언니가 오랜만에 왔으니까 어서 언니랑 시간을 보내러 가야겠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썼다. 게으르고 꾸준하지 못하더라도 종종 다시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오늘 모닝페이지를 꼭 써야지, 도 다짐했다. 한 번 미루다 보면 영원히 미루고 싶은 게 내 마음이라 다시 시작하는 것엔 아주 사소한 것이 됐더라도 용기가 필요하다.

아 화장실 가고 싶다. 오늘은 할 일이 많다. 오늘 하루가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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