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주류 우주

잃어버린 반지 이야기에서 나의 철학까지

by 엄달님

2025.11.23. 일 9:31


어느덧 일요일이다. 며칠 모닝페이지를 쓰지 않아서 그런지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난 것만 같다. 사실 오늘 아침엔 조금 더 일찍 일어났는데 생각이 많아져서 글을 쓰지 못했다. 갑자기 내 왼손 중지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보니 할머니가 선물해 주셨던 반지가 사라진 거다 갑자기. 어제 분명히 하루 종일 끼고 있었고, 분명 잠들 때만 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착각인가. 이전에도 한 번 잃어버린 경력이 있었으나 엄마가 거실 청소를 하며 매트리스 구석에서 발견한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방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 샅샅이 뒤졌으나 반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부터 멘붕이다.


예전에는 투어 공연을 갔다가 용인에서 아빠가 선물해 주셨던 음표 모양 금목걸이를 잃어버렸다. 공연 중에는 장신구를 할 수가 없어서 잠깐 가방에 빼놓았는데, 집에 와서 보니 목걸이가 사라져 있었다. 아마 가방 틈으로 빠져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박람회에서 남이 흘린 목도리를 주워 왔는데, 그날 저녁 식당에 비싼 보조배터리를 놓고 나왔다. 식당에 문의했는데, 배터리의 행방은 묘연한 듯했다. 하나가 오면 하나가 가고, 이득이라 생각했지만 아니고, 손해라 생각했지만 이익인 경우가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게 인생이구나. 아, 물론 내가 목걸이와 반지를 잃어버린 게 어떤 이익으로 돌아왔는지는 전혀 모르겠다만. 이 반지를 기적적으로 또 찾을 수 있을까? 할머니가 알아채기 전에 찾아야 하는데. 큰일이다.


이래서 나는 귀중품을 구입하는 일 자체를 꺼린다. 잘 잃어버리고, 덤벙거리기 때문이다. (물론 손가락이 못생겨서 반지를 끼기 싫은 것도 한 이유다) 남들 다 맞추는 결혼반지에도 사실 별 생각이 없다. J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뭔가 점점 나이가 들 수록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체감을 하고 있다. 친구와 통하는 대화, 사람들과 통하는 주제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맞닿아 있으려면 남들이 하는 것을 걸러서는 안 되는 거다. 그런데 나는 늘 주류의 것에 반항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명품가방을 위해 사활을 걸고 싶지는 않지만 한옥집을 개조해서 살아보고 싶기는 한 비주류 인생이다. 사실 이 비주류 인생에 돈이 더 많이 들지도 모른다.


반지 잃어버린 얘기에서 어떻게 비주류 인생까지 글이 흘러 왔는지 모르겠다. 남들은 다 아파트를 사니까, 나도 최근엔 자산 증식을 위해선 아파트가 꼭 필요하구나 생각해서 이런저런 동네의 아파트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살 수가 없다. 너무 비싸서. 나는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데, 왜 아파트를 찾기 위해 혈안이었지? 재산 증식을 위해? 안정적인 부동산 투자를 위해? 결국에는 내가 언젠가 아파트를 구입한다고 쳐도 나는 꼭 주택에 살리라. 시간이 지나도 모습을 간직한 동네에서 살리라. 이럴 땐 내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떠나고, 사라지고 있던 것이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걸 환영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열린 마음이 중요한데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었던가? 생각해 본다.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나는 50% 정도 먹고 들어가는 비주류 인생을 살고 있다 믿는다. 요즘 인터넷 세상엔 극단적인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이런 이야길 함부로 했다가는 화를 면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여긴 브런치고, 이 공간은 내 모닝페이지니까. 어제 학생과 수업을 하다가 한 단어를 배웠다.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나도 영어 표현을 종종 배우곤 한다. "it's a stretch" Stretch. 늘이다? 펴다? 뭘까. 뭐냐면, 쭉 늘인 것처럼 사람들이 너무 양극단에 있다는 표현을 할 때 이 말을 쓴단다. 즉 너무 극단적인 경우에 쓰는 말이라고. 아아. 쭉쭉 늘인 고무줄의 끝처럼 너무 극단으로 가 있다는 것이구나.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다. 가끔은 보수적인 나, 어떤 때는 굉장히 급진적인 나. 용감한 나, 두려운 나, 불안함에 떠는 나. 정의로운 나, 가끔은 양심을 팔아먹은 나. 너그러운 나, 짜증 부리는 나. 사랑이 많은 나, 사랑이 말라버린 나. 조급한 나, 여유로운 나. 게으른 나, 성실한 나. 이 모든 성질이 하나로 모였을 때 '나'라는 우주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다. 하지만 결국에 나는 내가 '좋다' 혹은 '옳다'라고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난 너무나도 주류이고 싶지만 때론 비주류 인생을 사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옳은 길을 가는 것에 도움이 더 되는 것 같다. 약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 너무 잘났다고 믿어버리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니까. (어렸을 땐 주로 그랬다) 하지만 내 우주의 중심이 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


그럼에도 나는 돈이 많아지고 싶다. 언젠가 성공을 거두고 싶다. 나이를 먹어서도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주류와 비주류의 중간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고 싶다. 남들이 다 옳다고 말하는 것에 가끔은 반기를 들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목소리 내는 일에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지금은 어떤 게 옳은 것인지,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인지 사실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믿으면 일단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뚝심이 필요한 시기다. 흔들리지 말자. 하나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겠다. 미래의 나와 통신이 요 며칠 조금 좋지 않아서 연결이 살짝 끊겼다. 꾸준히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최근 갔던 배우 일자리 박람회에선 살짝 수치스러운 경험을 했다. 누군지 알 지도 모르겠는 한 제작사의 대표라는 사람은 내 프로필을 종이 쓰레기 이면지 다루듯 했다.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음식을 더럽게 쩝쩝 씹어먹다가 한 마디 조언을 건넸다. 요즘 직장인에서 배우가 된 사람은 너무 많고, 본인이 '신선한 배우'라고 했는데 우리에게는 모두가 신선하니 당신의 PR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고. 그러니 본인의 매력을 찾으라고. 너무나 맞는 말이었는데, 나는 왜 기분이 나빴을까.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을까. 그 사람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내 바로 전 순서였던 배우가 명문대 로스쿨을 졸업해서 3년간 변호사로 일하다가 배우가 된 사람이었으니, 내가 언론 전공자에서 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이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겠다 싶다. 나는 내 매력을 보여주는 자리에서 항상 작아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마음을 열고 나를 보여줘야 할까? 고민해 봐야겠다.


하.


그나저나. 반지는 어디갔담.

남들이 끼는 반지와는 다르게 생긴 독특한 반지인데. 우리 할머니가 2022년 내 생일에 선물한 반지인데.

오늘은 우선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리고, 샤워를 하고,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해야겠다.


반지는 어디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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