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무너져 있었다.
무기력했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유튜브에서 ‘런닝맨 레전드’를 무의미하게 틀어놓고 웃는 척했다.
그게 유일하게 ‘아무 생각 안 해도 되는 시간’이었으니까.
출퇴근길엔 늘 뛰었다.
회사에선 일당백으로 일했고, 임원들의 압박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막혔다.
‘왜 살아야 하지?’
‘차라리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점점 익숙해졌다.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결국 가장 약한 곳으로 흘러갔다.
잘못 없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고,
아이들은 나를 닮아 소리를 질렀다.
집 안은 매일 전쟁터였다.
남편과의 말다툼도 늘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일도, 육아도, 관계도.
아무것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 시절 내 일기장을 펼쳐보면
어느 페이지를 봐도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우울하다.”
“그만두고 싶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던 내게 아들이 물었다.
“엄마, 요즘 회사가 힘들어?”
그 한마디가 내 가슴을 찔렀다.
아이들이 내 표정에서, 목소리에서
‘엄마 좀 살려달라’는 신호를 먼저 읽었던 것이다.
그날 밤, 처음으로 스스로를 마주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지쳐 있는 걸까?’
감정을 단순히 ‘짜증 난다’, ‘화난다’로 덮지 않고
그 감정의 감정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다 보니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시선이 달라졌다.
아침마다 아이를 챙기느라 바쁜 시간이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향하는 감사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육아가 너무 힘들다’는 말 대신
‘예쁜 아이 둘을 키우는 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박 육아로 억울하다’는 말 대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생겼다.
삶의 무게가 줄어든 건 아니었지만,
그 무게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암흑 같던 하루하루가 조금씩 밝아졌다.
나는 일기를 쓸 때,
현재의 일뿐 아니라 ‘미래의 나’를 함께 썼다.
33세의 내가 45세의 봄을 상상하며,
36세의 내가 47세의 봄을 떠올리며
꽤 구체적인 미래 일기를 썼다.
단발머리에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나,
TV에도 출연하고,
팀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한 나,
그리고 여전히 4살 터울 남매의 엄마로 웃고 있는 나.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그때 썼던 대부분의 일기는 현실이 되어 있었다.
머리 스타일까지 놀랍도록 비슷했다.
아직 이루지 못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책을 내고 강의를 하는 나’,
다른 하나는 ‘월세를 받고 있는 나’.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일기 속 ‘미래의 나’가 결국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는 걸.
지금 너무 힘들다면,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일기'를 써보세요.
그리고 꼭 나의 몇 년 후, 몇 십 년 후의 모습을 그리며
미래 일기 쓰는 걸 꼭 추천합니다.
미래의 모습엔 분명 환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테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