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 학군지 무관심자에서, 학군지 신봉자가 되기까지
당신의 환경이 당신의 수준을 결정한다.
성공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다.
물고기는 물을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탁한 물에서는 자라지 못한다.
몇 달 전, 우리 가족은 거주 환경을 개선하려고 새로운 동네를 알아보다
자연스럽게 학군지로 이사하게 되었다.
아이 공부 때문에 이사한 건 아니었고, 그저 좋은 동네를 찾다 보니
좋은 동네가 학군 지였을 뿐이었다.
사실 나는 학군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자란 동네도 소위 말하는 비학군 지였지만, 그곳에서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지금 대부분 전문직으로 잘 살고 있다. 조카들도 비학군지에서 전교권에 드는 걸 보면서 공부할 아이는 어디서도 한다. 가 나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이사를 하고 난 뒤 아이들에게 들은 '현장감 있는 이야기'와 실제로 아이의 변화를 보며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학군지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이맘때쯤이면 많아질 때라,
우리 아이들의 변화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매일 선생님께 혼나는 아이조차, 공부를 잘해-
이전 초등학교에서는 단원평가에서 90점만 받아도 잘하는 아이에 속했다.
아이도 늘 자기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 나에게 꾀나 어필했다.
그러나, 학군지에 와 보니 평균이 90점대였다.
아이 말로는 20-30점대 아이는 한 명도 없고,
"매일 혼나던 애조차 공부를 잘한다"라고 했다.
문제의 수준도 달라졌다.
단순 객관식 위주의 시험은 서술형 중심으로 변했고
교과서는 학기 끝나고서야 볼 수 있었는데 시험 준비를 위해 아이가 스스로 교과서를 챙겨 와 집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경이 아이를 공부하게 만드는 장면을 처음 목격한 순간이었다.
애들이 하나같이 순해-
아이 말로는 이전 학교는 늘 사건사고가 일상적이었단다.
예전에 담임선생님이 "교육보다 안전에 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지나쳤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도, 아이도 그게 늘 일상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학군지 학교에 오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작은 다툼도 '사건'처럼 여겨지고,
선생님께 바로 전달되고 교정을 받아야 한다.
아이 말로는 '너무 잠잠해서 심심할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연스럽게 아이 자신도 함께 차분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이의 행동까지 바꾼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화장하는 애들이 없어-
초등 고학년이 되면, 여자애들은 화장에 관심 갖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우리 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올리브영 가서 화장품 고르고, 유튜브 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사 후, 아이는 점점 화장을 하지 않게 되었다.
반에 화장하는 아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같은 반 아이들은 이런 상황이었다.
앞자리 아이는 고등 영어 문제를 풀고 있고
짝꿍은 이미 중3 수학을 하고 있고,
단짝이 된 친구는 수학학원에서 영재반에 다니고 있었다.
이전에는 집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며,
매일 같이 집에서 공부와 씨름을 했었다.
하지만, 아이도 주변 친구들을 보아서 인지
학원 숙제가 예전보다 많아졌지만, 이제 '나도 해야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이 정도는 다 하는 거구나'라는 집단의 기준선이 아이를 공부로 이끌었다.
사방이 학원이고, 커피숍에서도 공부해..
중학생 아들과 고등 대비 학원을 알아보며 동네를 둘러보니,
확실히 이전 동네와 분위기부터 달랐다.
건물마다 수학, 과학, 영어, 국어 학원이 가득하고,
학원 옆 카페에서는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이 흔하게 보이고
길가에는 코인 노래방과 뽑기방보다는 편의점과 식당이 보인다.
아이도 말했다.
"여긴 온통 학원거리에, 커피숍에서도 저렇게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나도 게임 더 하지 말고 공부해야겠다."라는 말을 했다.
환경이 다르니, 마음도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니 행동도 달라졌다.
게임하던 시간을 줄여야겠다며 스스로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결국, 사람은 주변 환경을 보며 기준을 세운다
'무엇을 보며, 누구와 있는지'가 인생을 바꾼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
공간
인간을 바꾸면 된다고 하더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내가 누구를 보고 자라는지,
어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가치가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지,
이 모든 것이 아이의 미래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바꿔 놓는다.
나는 학군지를 맹신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환경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학군지의 가치는 단순히 성적이 아니라,
아이의 생활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나는 물론 아이도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