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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Jan 11. 2021

밴쿠버에 살지만 밴쿠버에서 살 수 없는 이유

캐나다 이민살이 #1

Image by InsightPhotography from Pixabay 


해마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도시 밴쿠버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다. 겨울이면 커다란 나라 전체가 꽁꽁 얼어붙는 캐나다에서도 눈이 거의 내리지 않고 온화한 기후를 갖고 있다.


보통 밴쿠버라고 하면 행정구역 상의 밴쿠버 시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열 개의 조그만 도시들을 묶어서 메트로 밴쿠버 혹은 광역 밴쿠버 Metro Vancouver Regional District(MVRD)라고 부르는 곳을 말한다. 광역 밴쿠버의 범위는 시기에 따라 변해 일정치가 않아 경제, 생활권과 교통 등의 관점에 따라 포함되는 도시들이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웨스트 밴쿠버 West Vancouver, 노스 밴쿠버 North Vancouver, 버나비 Burnaby, 코퀴틀람 Coquitlam, 델타 Delta, 리치먼드 Richmond, 써리 Surrey 등이 광역 밴쿠버에 해당한다.


밴쿠버는 캐나다 도시 중에서는 아시아 인종의 비율이 가장 높은 다문화 도시로, 대륙 횡단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건너온 일 세대 중국 이민자, 홍콩의 중국 반환 시절 건너온 홍콩인들, 종교 박해를 피해온 이란계 이민자들, 인도, 파키스탄, 네팔계 아시안들도 높은 비유를 차지하고 한국인들도 전체 인구 중의 12% 정도 된다. 같은 문화권 이민자들이 끼리끼리 모여사는 경향이 강해서 리치먼드는 화교계의 중국사람들이, 노스밴쿠버나 웨스트 밴쿠버에는 이란계 이민자들이, 써리에는 인도계 사람들이 많이 살고 한국사람들은 주로 코퀴틀람에 몰려 사는 편이다.


광역 밴쿠버는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이지만, 행정구역 상의 밴쿠버 시는 크지 않고 광역 밴쿠버 도시 중에서 집값이 비싼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최고의 부촌이라 할 수 있는 포인트 그레이, 쇼네시, 던바, 케리스 데일, 키칠라노 등이 밴쿠버시에 있다. 밴쿠버의 부촌에 있는 집들은 메트로 밴쿠버에서 집값이 비싼 또 다른 지역인 웨스트 밴쿠버의 집들보다 훨씬 비싸다. 특히 키칠라노 포인트 그레이 로드에 있는 집들은 대지 가격이 거의 평당 1억 원에 달할 정도의 어마 무시한 가격을 자랑한다. 밴쿠버에서 가장 비싼 집도 포인트 그레이에 있는데 집이 매물로 나올 경우 호가가 1000억 원이 넘을 수 있다고 한다. 밴쿠버의 집값이 비싼 이유가 살기 좋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나 가서 살 수 있는 곳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누구에게 살기 좋은 곳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렌트비도 당연히 비싸다. 어학연수를 오는 학생들이나 워홀로 오는 젊은 사람의 경우에는 학원이나 일할 곳이 많은 다운타운에 많이 거주하는데, 비싼 렌트비 때문에 원베드룸 아파트에 여러 명이  같이 사는 경우도 많다.


이민 오면서 밴쿠버에 랜딩을 한 이유는 밴쿠버가 캐나다에서 덜 춥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에 마침 밴쿠버에서 유학을 와 있던 친구네에서 한 달가량 얹혀살다가 나와서 타운하우스, 단독주택 지하, 원베드룸 아파트, 학교 기숙사 등등 여러 가지 주거 형태를 경험했다. 경제적 여건상 대부분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나 룸메이트가 있었다.  처음 몇 년은 거의 반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하는 유랑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사 년 만에 살림살이를 친구 집 차고에 맡겨놓고 한국에서 일 년을 보내고 다시 돌아왔다.


돌아와 살 집을 구하러 다녔다. 떠나기 전에도 메트로 밴쿠버의 외곽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교적 싼 지역인 써리에 살게 되었다. 집을 보러 다닐 때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위치를 원했고, 다행히 역세권에 집을 구했다.  집 앞 길 건너편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거기서 일분 걸어가면 전철역이 나온다. 쇼핑몰, 공원과 도서관이 모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살기에 편하다.


그런데 써리의 문제는 프레이저 강의 동편에 위치해서 밴쿠버로 나가자면 강을 넘어야 하는데 다리가 달랑 세 개뿐이어서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체증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사하고 자동차도 구입을 했고, 몇 달은 집 근처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다리를 넘어가야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몇 달만에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밴쿠버 그것도 밴쿠버 웨스트 지역에 직장이 있어서 매일 밴쿠버까지 출퇴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자동차로 출퇴근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직장까지 50킬로미터가 넘고 프레이저 강을 넘어가야 할 뿐 아니라, 가는 길 대부분이 교통체증으로 막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더 빨리 갈 수 있어서 결국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전철을 타고 삼십 분을 가서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한다. 전철역이 집에서 가까워서 그나마 수월한 편이어서 역 근처에 집을 구해서 다행이긴 했다.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을 출퇴근하는데 보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직장 근처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 지역의 렌트비는 내 월급으로 엄두도 못 낼 노릇이라 십 년 넘게 출퇴근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올해는 팬데믹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서 당분간이지만 출퇴근에서 해방되었다.


월급 따박따박 받아서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소원대로 살고 있지만 밴쿠버에서 직장 근처에 살고 싶다는 내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대도시의 평범한 봉급생활자가 다 그렇겠지 뭐 나만 그렇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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