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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명자 May 10. 2021

붓으로 자유를 찾은 모드 루이스(Maud Lewis)

-가벼움을 위하여 -

이 세상엔 보이지 않는 꽃들의 전령이 있는 것 같다. 전령의 지휘에 따라 꽃들은 일제히 피었다 지길 반복한다. 담장마다 줄장미가 빨갛게 피고, 길거리엔 금계국이 노랗게 피었다. 산책길엔 산딸나무가 흰 꽃을 피워 잎사귀 위에 사뿐사뿐 올려놓는다. 나는 이 계절이 너무 좋다. 꽃들과 교신이라도 하듯 눈밭을 뒹구는 삽살개처럼 온 천지를 헤매며 춤을 추고 싶어진다. 신체의 굴곡을 내보이며 거리를 자유롭게 걷고 있는 뉴욕의 여자들처럼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가벼운 몸과 영혼을 춤을 추고 싶다.


나는 삶이 만들어 준 이름과 지위, 걸치고 있던 옷과 치장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가끔은 훨훨 던져 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것들은 나에게 너무 꽉 끼고 답답했다. 언제나 친절한 얼굴로 웃으며 좋은 엄마와 선생, 그리고 며느리, 딸로 이웃으로 서 있지만 실상은 버거웠다. 보여지는 얼굴 뒤에 가려진 진짜 나는 늘 헉헉거렸다.


얼마 전 나는 ‘내사랑(원제: Maudie)’이라는 영화를 보고 ‘자신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찾은 여인 모드’를 알게 되었다. 늘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남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추어 사느라 힘들었던 내게 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영화는 모드 루이스(Maud Lewis)라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영화를 보고 ‘내 사랑 모드’라는 책도 읽었다. 


모드 루이스는 선천성 장애를 가졌고 남들에게 냉대와 멸시를 받았지만 그림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행복을 찾았다. 영화 속에서 모드는 무언가 좀 부족해 보인다. 깊게 패인 얼굴 주름에 엉클어진 파마머리, 깡마른 외모의 그녀는 얼핏 보아도 신체장애가 느껴진다. 등이 굽고 손과 발은 불편하고 말투는 어눌하다. 그러나 내면은 순수하고 강하다. 그녀가 웃고 있으면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엔 강한 모습이 느껴진다. 


오빠와 숙모로부터 외면당하고 천덕꾸러기로 살아가던 그녀는 입주가정부로 에버렛의 집에 들어가고 그와 결혼을 하면서 서서히 존재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바로 그림을 통해서다. 30여 년 동안 작은 오두막집에서 모드는 자신의 ‘창’으로 보여 지는 대상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려 나간다. 순수한 영혼이 느껴지는 그녀의 그림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큰 사랑을 받게 된다. ‘붓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원하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하던 그녀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초라한 삶을 산 여인 같지만, 자신만의 세상에서 성장해 가며 강인하게 행복을 가꾸며 살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난 충분히 사랑 받았어요!” 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니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고유한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고 자신을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스스로를 속박하고 진짜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내가 만들어 놓은 에고(ego)의 성에 갇혀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당신은 당신으로부터 자유로운가’라는 말은 참으로 의미있는 질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세상에 놓여있는 위치를 살피는 객관의 시각과, 나의 근원이 자리한 곳에 대한 성찰이 놓여있는 주관의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모드의 삶을 바라보며 내가 만들어낸 구속을 바라본다. 내가 만들어 놓은 아집을 벗어버리고 이제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슈퍼에 간단한 물건을 사러 나갈 때도 깔끔하게 옷을 갖춰 입고, 늘 단정한 모습만 보이고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삶 속에서 때때로 버리고 비우고 걷어내면서 무게를 줄이고 물기를 빼고 가볍게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나는 ‘내 사랑’의 OST ‘Dear Daring’ 음악을 들으며, 갓 결혼한 모드가 남편 에버렛이 태워주는 수레를 타고 초원을 가로지르던 장면을 떠올린다. 터질 것 같던 모드의 웃음 속엔 붓으로 자유를 찾은 희열이 느껴진다. 그녀의 그림엔 화려한 꽃, 신명나게 날아오르는 새들, 올망한 눈으로 우리들을 바라보는 동물들, 천진하게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 행복하고 따스한 기억을 선사하는 동네와 자연이 꽉꽉 들어차 있다. 작고 낡은 오두막에서 불편한 몸으로 누릴 수 없었던 삶을 보상이라도 하듯 그림은 다채롭고 힘에 넘친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그녀가 이루어낸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나도 모드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얼굴로 내 삶의 꽃을 활짝 피우고 싶어진다. 나는 그녀의 그림을 보고 또 본다. 그러다 보면 자유로운 모드를 닮아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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