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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명자 May 05. 2021

미움살

- 이제 벗어난 그림자를 돌아보며(그림은 엄명자의 '푸른 눈')


나는 한때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참 많이 받았다. 어떤 분은 내게 ‘미움살’이 끼었다고도 했다. 한창 문학에 심취되어 시를 쓰던 30대에 유독 나를 비판하는 선배가 있었다. ‘네 작품은 별 볼일 없다.’, ‘너무 잘난 체 한다.’ 라고 하며 대놓고 공격하는 데 처음엔 살이 떨릴 것처럼 충격을 많이 받았다. 차츰차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만.  


학교에서는 젊은 시절부터 주목을 받고 부장을 하다 보니 선배들이 “똑똑한 엄명자, 니가 다해라.”라며 공개적으로 핀잔을 주기도 했다. 연구부장을 할 때는, 밤을 새서 학기말 성적일람표 점검을 하고 수정할 것에 표시를 해서 되돌려 드리면 “니만 잘났나? 나도 잘났다.”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지나치게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는 나를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적당히 해도 될 텐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나요? 옆에 있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비교 되어 피해를 입잖아요.” 나는 언제부터인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 받는 것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 되었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학교에서 교무부장을 하면서 연구학교 주무를 맡게 되었다. 교무부장은 교장, 교감선생님이 경영을 잘 할 수 있도록 보좌하고 선생님들의 의견을 학교 경영에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연구부장을 하면서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었다면 교무부장은 학교 전체를 잘 아우르고 보듬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 때, 학교 분위기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동료끼리도 화합이 잘 되지 않았고 매사에 지나치게 비판적인 분들이 계셔서 살벌한 분위기였다. 3월 학년 초부터 나는 계란을 한 판씩 삶아갔다. 아침 식사를 못하고 오는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분위기도 좀 바꾸어 보고 싶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삶은 계란을 바구니에 담고 소금을 작은 접시에 담아내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일과였다. 선생님들은 “또 닭 한 마리 먹고 시작해 볼까?”하시며 삼삼오오 모여서 계란을 드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점 교무실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텃밭에 있는 복숭아를 땄다고 가져오시는 분, 제사를 지내고 떡을 가져오시는 분, 친척이 보내온 고구마를 삶아 가져오신 분들이 생겨났다. 나는 2년간을 그렇게 계란을 삶아갔다. 나중에는 양계장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부탁해서 일주일치 계란을 택배로 받아 주방에 쌓아놓고 계란을 삶아가기도 했다. 누군가 이 일을 시켰다면 아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 함께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학교는 놀랍게도 점점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분위기로 변해갔다. 교감선생님은 빵도 구워 오시고 야근을 하는 우리들을 위해 손수 밥도 해 주셨다. ‘좋은 학교 박람회’나 ‘연구학교 보고회’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너나없이 함께 참여하여 힘을 모으고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선생님들은 관리자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별빛음악회’와 같이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해서 추진하기도 했다.  


내가 어릴 적, 세를 얻어 쌀가게와 연탄가게를 하던 엄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우리 가게는 물론이고 남의 가게 앞까지 훤하게 쓸어놓으셨다. 전을 굽거나 떡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웃 사람들과 모여서 나누어 먹었다. 어떨 땐 막걸리 한잔씩 하면서 노랫가락을 뽑을 때도 있었다. 이웃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도와주고 함께 걱정했다. 나는 그런 어른들이 좋았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서로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것을 보며 그것이 행복임을 느꼈다.   


나이가 들면서 나도 엄마처럼 점점 나누고 베푸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좀 더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너무 까탈스럽지 않고 언제나 다가가고 싶은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러기 위해 나 자신이 가진 가시를 잘라내려 노력을 많이 했다. 아직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족한 점이 많고 여전히 삐걱댈 때가 생기지만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면서 예전의 그 미움살은 조금 걷어낸 느낌이 든다.  


내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내게 문제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은 나의 거울이 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 내게 하는 행동 속에 나의 행동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지나치게 잘난 체를 한다던 가,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 내 방식만 고집할 수도 있고, 에고 속에 빠져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나는 점차 내면을 탐구하고 행동패턴과 동인을 규명하는 공부를 함으로써 지도를 보는 것처럼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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