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웠다. 학부모 앞에서나 선생님들 앞에서 실수를 할까봐 또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될까봐 겁이 났다. 마음이 안 편했고 몸과 마음이 경직되었다. 사람들이 이런 나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너무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나의 이미지는 달변가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완벽주의 성향의 교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쫄보는 아니었다. 교사 시절엔 몇 백 명의 청중 앞에서 사례발표도 하고 강의도 곧잘 했다. 그런데 이렇게 쫄보가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장학사가 된 첫 해 겨울이었다. Y교육지원청으로부터 2015개정 교육과정 연수를 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 운영 주무이기도 했고, 초등교육과정을 전공한 교육학 박사이니 강의 실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맡긴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강의 준비를 생각만큼 그렇게 알차게 하지 못했다. 개정되는 내용만 비교 분석해서 PPT에 넣고 정보만 전달하는 방식의 강의를 했다. 게다가 희망하는 분이 연수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한 학교에 한 명씩 차출되어 오셔서인지 선생님들의 얼굴 표정도 어두웠다.
시간이 갈수록 강의실 분위기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나는 PPT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설명하는 것이 너무도 고역이었다.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선생님들의 표정은 날카로운 도구로 나의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실망했다는 듯, 바쁜 사람 붙들고 이런 연수를 왜 하느냐고 책망하는 것만 같았다. 강의 준비도 스킬도 유머도 부족하고 선생님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나는 부끄러워서 땅을 파고 숨어들고 싶을 지경이었다. 지금도 쒜한 그날의 분위가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때부터 나는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장학사 생활과 교장 역할 하면서 행사에서 간단한 사회를 맡고 인사말 정도만 했다. 그러다가 올 해 내 인생의 첫 책 『초등 엄마 거리두기 법칙』을 출간하고 대중 앞에 서야 할 일이 많이 생겨났다. 유튜브 방송에 초대되어 인터뷰도 하고 강의도 해야만 했다.
두렵다고 이제 더 이상 피하고 도망칠 일이 아니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말 잘하는 법’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나게 된 전직 아나운서 멘토께 말하기 코칭을 받게 되었다.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면 하늘이 그 길을 열어주는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말을 좀 하려면 가슴에 무거운 바위가 얹혀 진 느낌이었다. 벽이 내 앞을 떡하니 가로 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말만 하려면 가슴이 답답했고 싫었다. 유명 강사들이 PPT를 짜고 스크립터를 작성해서 실전연습을 수십 번 한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나의 목소리 대면하는 것조차 싫어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말하기 멘토의 코칭을 받으며 변하기 시작했다.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말하는 연습을 했다. 입 근육을 풀기 위해 무엇이든 말을 했다. 처음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하다가, 차차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퇴근 후엔 강의할 PPT를 짜고 스크립터를 써서 시연을 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친한 사람에게 대화를 하듯 말을 하고 복식호흡을 하면서 말하는 연습을 했다.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천천히 말하거나 멈추고, 높낮이의 변화를 주고, 유머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혔다. 강의할 때의 자세와 시선 처리하는 방법과 청중을 리드하는 법을 배웠다. 또 이미지 메이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배워나갔다. 거의 한 주에 한번 씩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강의를 하러 가는 차 속에서도 그날 강의할 내용을 모조리 외워서 시연을 하면서 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장면이다. C교육지원청에서 유치원 학부모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우와, 드디어 해 냈다. 나는 이제 자유다.”라고. 나는 그동안 주눅이 들어 있었고 쫄보였다. 그 날 나는 비로소 내가 만들어 놓은 두려움과 불안의 감옥에서 탈출해 자유인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라고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그 이후에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강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말하기 멘토는 나의 발전에 연신 놀라시는 눈치다. 신기하게도 나의 어릴 적 꿈이 ‘아나운서나 성우’였다는 것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 담임 선생님께서 목소리가 예쁘다고 방송도 자주 시키셨고, 웅변대회에도 많이 나갔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다 보니 내 안에도 탈렌트의 끼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벽을 다리로 만들고자하는 시도가 없었다면 깊은 동굴에서 잠자고 있을 재능이다.
결국 벽을 다리로 만드는 방법은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길임을 깨달으면서 앞으로 나의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