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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mpebble Oct 12. 2017

20171012-2

수면

처음 수면제를 받으러 간 게 올해 6월 초다. 최근에 수면제 봉투를 뒤적이며 알았다. 6월 2일. 내과에 처음 가서 '잠을 잘 못 자는데 수면제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했던 날이다. 그날 내과를 나오며 정신과에 예약 전화도 했다. 6월 2일까지 가 닿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거진 한 달 동안 심리상담센터나 괜찮은 정신과를 알아봤고, 잠은 그 전부터 잘 자지 못했으니까 불면이란 내게 참 오래된 장애가 됐다. 장애. 장애라. 요새는 내 몸이 앓는 질환을 어떻게 잘 껴안고 이해해야 하는지가 너무나 어렵다.


최근에 아빠에게 비문증이라는 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빠는 비문증을 앓은 지 5년이 되었다는데, 나는 아빠에게 그런 병이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비문증은 눈에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들이 기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질환이라고 한다. 직업상 컴퓨터 모니터와 책을 달고 사는 아빠에게 그런 질환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랍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5년이나 앓았는데 내가 몰랐다는 것이 좀 충격이었다. 아빠가 처음 벌레를 본 순간은 어떤 워크숍 자리였다는데, 갑자기 눈에 벌레들이 꼬여서 화장실로 달려가 눈을 벅벅 닦았는데도 벌레들이 안 없어지더란다. 일단은 중요한 워크숍 자리이고 워크숍이 열린 장소도 시내가 아니어서, 그냥 두어 시간을 버티자며 앉아 있었다고 했다. 아빠. 그래도 그렇지, 그냥 나와버리지 그랬어. 눈 속의 수천 마리 벌레와 워크숍이라니. 그 지옥을 왜 버티고 앉아 있었어. 아빠는 서울에 돌아와 병원에 갔지만 돌아오는 말은 '방도가 없어요'였고 그냥 비문증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한 번 생기면 없어지지 않아요, 비문증은. 없어지지 않는다니. 5년 전 그 진단을 받는 순간은 망연자실했지만 이제 비문증과 함께 살아온 지 5년, 아빠는 이제 벌레들이 검정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벌레들은 이제 흰색이 되었다고. 그리고 검정 벌레보다, 흰색 벌레가 훨씬 부대낌이 적다고. 아빠가 말했다. '이제는 딱히 의식하지 않아. 그냥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


사람이 어떤 질환을 평생 안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빠가 비문증을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나도 나의 수면장애를 받아들이는 날이 올까? 나는 아직도 내가 약 없이 잠드는 날을 기대한다. 햇볕이 드는 날, 풀벌레가 우는 날, 차가 달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날, 거실 바닥에 누워 낮잠에 곯아떨어지는 날을 기대한다. 몇 년 전에 처음 불면을 앓았을 때도 이렇게 똑같이 기대했었다. 그후 낮잠을 다시 자는 날이 결국에는 왔었으니까. 이번에도 버티다 보면 그 날이 또 오지 않을까. 그러니까 기대하는 것이다. 이 질환이 사라지기를.


질환이란 불편한 것이다. 불편하니까 질환이다. 나의 질환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그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다면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 '당신도 당신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질환이 사라지길 바라죠? 결국엔 없어지길 바라잖아요. 다시 자연스럽게 살 수 있길 바라잖아요. 아니에요? 당신의 질환을 온전히 받아들인 거예요? 정말? 어떻게요?'


사람은 나약할 때, 어떤 복잡한 삶의 문제를 외면하고 피하고 싶을 때, 이분법에 기대고 싶어한다. 질환이 사라지거나, 사라지지 않거나. 후자가 현재면, 전자는 미래여야 해. 아무도 나에게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않는데, 내가 나에게 이야기한다. '너 아직도 약 먹고 자는구나. 대체 언제까지 먹을 거야?' 내가 나를 꾸짖고 내가 나를 타박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삶은, 질환은, 마음은, 이분법으로 재단되지 않는다는 걸. 한번 태어난 것이 깨끗이 그 흔적을 없애고 사라질 리는 없다. 수면장애를 포함해 나를 괴롭히는 강박성 사고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들을 덜 불편하게 여길 날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의사에게 "제 심리치료의 목표가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내가 나의 증상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을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다. 잠은 오지 않다가, 또 오다가, 또 오지 않을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 지금은, 어쩌면 계속, 나는 나의 수면장애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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