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에 위치한 이 학교는 30년 남짓된 남자기숙사 고등학교다. 사립은 사립인데, 자사고도 아니고 농어촌특별고등학교(?)로서 전국단위 학생모집이 가능한 그런 괴상한 학교다. 창립자 한조해 선생은 북한에서 한의사(그때는 한의사 제도도 없었음)를 하시다가 6.25때 월남해서 남산에 '한일한의원'을 세우고 돈을 벌어 한일고를 설립하셨다고 한다. 내가 고2때 설립자께서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상여가 학교를 돌때 모든 학생들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었다. 지금은 우리 학교 뒷산에 잠들어계시고, 정말 우리에게 '사인여천'의 정신을 가르쳐준 사랑의 전령이다.
암튼, 우리는 학원도 못 다니고, 과외도 못 받았다. 물리적으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선생님들도 집에 빨리 퇴근하시고, 지금와서 돌아보면, 수업의 퀄리티도 뭐 그닥 압도적으로 높은건 아니었던것 같다. (죄송해요 선생님들 ㅎㅎ) 그런데 매년 성적이 좋은 학교로 소문나서 지금의 한일고가 되었다. 지금은 강남엄마들의 버킷리스트에 들어간다고 하니, 감개무량하다.
우리는 다른 학교와 다른 환경이었기 때문에, 매우 특이한 성장방식을 지녔다. 할게 없어서 공부를 했고, 야간자율학습에 좀 떠들어도 됐다. 공부가 즐거웠다. 경쟁은 엄청 심했는데, 사실 경쟁자라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었다. 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질문 을 했어야 했다. 답을 모르는 경우, 그 답의 솔루션을 질문하는게 아니라, 그 답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친구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질문이었다. 당연히, 과목별로 잘하는 친구들이 나뉘어있었고, 그들을 찾아가서 예를 갖춰서 답을 구하는게 3년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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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받은 친구는 기분이 좋다. 실력을 인정받은것이니까. 그래서 답을 흔쾌히 알려준다. 만약 모르면, 자기가 학습을 빨리해서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알려준다. 알려주는 과정에서 그 지식은 진정으로 자기것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즐겁게 공부를 했다. 한일고의 #집단학습 시스템은 집단지성이라는 결과물보다 훨씩 유쾌한 것이었다.
지금은 다들 사회에 나와서 열심히 살고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서로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알고있다. 서로 어떤 전문분야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있는지 관심이 있다. 그리고 살다가 모르는게 있으면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본다. 선배, 후배에게 전화한다. 편하니까. 어떤 질문이든 기분이 좋다. 모르면 더 공부해서 다시 알려주거나, 그걸 더 잘 아는 사람을 소개해준다. 이렇게 #한일고 집단학습 시스템은 즐겁게 확장되고 있다.
대안교육과 제주국제고 등이 사회적 관심을 받고있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한일고는 과외와 학원이 없는 버려진 동네의 기숙사학교다. 너무 좋았고, 삐뚤어졌던 내 성격도 친구들이 많이 고쳐줬다. 나의 삶이 계속해서 건강해짐에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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