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덴의 영화읽기 6] <스포트라이트>와 <자백>
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2주일도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도박사들과 영화 애호가들은 수상작을 미리 점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휩쓸어버린 <라라랜드>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부문인 14개 부문에 후보를 올렸다. 이는 <타이타닉>과 같은 기록이다. 또한 아직 국내에는 개봉하지 않은 <문라이트>라는 작품이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은 상태라 주요 부문 중에서도 최고 영광인 작품상이 어느 작품에게 돌아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은 <스포트라이트>에게로 돌아갔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스파이 브릿지> 등 거장 감독들의 작품을 이기고 언론인들의 집요함을 그렸던 작품이 영예를 얻었다. 올 해 시상식을 앞두고 작년 <스포트라이트>의 수상 요인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본다.
충격적인 소재와 스타 배우들
<스포트라이트>는 실화를 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수 십 년에 걸쳐 자행된 천주교 내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활약을 다뤘다.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3대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이름이다. 천주교 신도가 특히 많은 보스턴에서 성당을 대상으로 수사를 할 경우 나타날 반발은 예상됐다. 역시나 진실에 다가가기엔 너무나 장벽이 많았다. 하지만 집요한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를 통해 그들은 약 600개의 성추행 스캔들 기사를 수집했고 보스턴 지역에서만 90여 명의 아이들이 성추행을 당했던 사실을 세상에 꺼냈다. 결국 그들은 2003년 최고의 언론상인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언론은 어때야하는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정의를 위해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줬다. 결국 아카데미는 그 용기에 응답을 했던 것이다.
우선 소재의 충격이 주는 이야기의 파급력이 가장 큰 수상 요인이다. 아동과 관련된 범죄에 특히 예민한 미국에서 아동 성추행이라는 중죄 사건을 다뤘다. 그리고 그 범죄의 주체가 보스턴 지역에서 가장 신망을 받는 집단인 성당이었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의 진동은 매우 강하다. 이와 같은 스타일의 영화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소재의 충격성으로 인해 작품을 대하는 몰입도가 엄청 날 것이다. 그 반대는 그 소재가 주는 불편함 또는 무거움으로 관심을 아예 가지지 않는 경우가 있겠다. 이는 SBS의 대표적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를 마주하는 시청자들에게서도 잘 드러난다.
그래서 영화는 자칫 지루할 수도 또는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에 관객들의 관심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스타 배우들을 기용했다. <버드맨>으로 다시 부활한 마이클 키튼과 <어벤져스> <비긴 어게인>으로 상한가를 치던 마크 러팔로, <어바웃 타임>으로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인 레이첼 맥아담스를 전면에 배치했다. 영리한 선택이었다. 자칫 빛을 보지 못 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스타들의 이름값으로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된 셈이다.
비슷한 듯 다른 <자백>
작년 10월에는 극장가에 <스포트라이트>와 모양새가 비슷한 영화가 한 편 개봉했다. 일명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불린 사건으로서 2012년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가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내용을 다룬 이야기다. 이에 ‘뉴스타파’의 최승호 PD는 의심을 품고 탐사보도를 시작했고 그 조작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었다. 역시나 소재의 충격성은 컸다. 지금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실화였기 때문이다.
<자백>은 메이저 제작사와 배급사의 지원이 없었기에 예산이 부족했다. 그래서 최승호 PD는 극장 개봉을 위해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고 결국 기존 목표의 두 배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지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인 폭풍전야의 시기에도 많은 대중들은 전운을 감지하고 있었고 진실을 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과연 우리의 정부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백>은 훌륭한 사회고발 영화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적극 추천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역시 대중 상업 영화의 물량 공세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부분에서 <스포트라이트>가 가진 ‘스타성’ ‘네임 밸류’의 부재가 느껴진다. 과연 황정민이나 하정우같은 스타 배우가 원톱으로 이 영화를 이끌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애초에 제작비가 부족해 크라우드 펀딩을 할 정도였으니 스타 배우는 꿈도 못 꾸는게 현실이었고 그 푸념은 공상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우리도 만들 때가
위 두 작품의 비교는 어떤 걸 시사하나. 한국의 언론과 미국의 언론이 수준에 있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픈 게 아니다. 분명 우리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훌륭한 언론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영화에서만큼음 아직 한국 영화계는 ‘저널리즘’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없었다. (<자백>은 영화계가 아니라 언론사가 첫 삽을 떴으니 결이 조금은 다르다) 물론 <내부자들> <베테랑> <더 킹> 등 기자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많으나 등장에 그칠 뿐이었다.
요즘만큼 기자들이 부각되는 시기도 없다. 진실과 정의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기자들은 불철주야 고생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지켜본다. 애석하지만 얼마 전엔 폐쇄적인 출입기자 시스템으로 인해 부산의 한 젊은 기자가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었다. 한국 영화계가 이제 주목할 수 있는 이야기의 소재가 더 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적으로는 악재지만 창작자들에게는 호재다.
이제 한국 영화계도 <스포트라이트>와 같이 진실에 다가가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마케팅을 활용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다. 작년 연말 개봉했던 <마스터>는 이병헌,강동원,김우빈 이 세 명의 스타배우를 기용하고도 예상보다 파급이 약했다. ‘건국 이래 최대의 게이트’를 소재로 다룬다는 이야기의 힘만으로도 관객들의 눈을 돌리고 싶었으나 영화 속 허구가 당장 뉴스에 나오는 현실을 이기지 못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결국 이야기의 힘을 잃은 영화는 배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와 배우를 모두 잡지 못 하면 영화의 빛은 바래진다. <스포트라이트>의 성공과 <마스터>의 예상치 못한 부진을 보며 몇 년 후 이 시국의 모든 혼란이 정리되어 있을 때 스타배우들이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한국형 <스포트라이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