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덴의 영화읽기 8] <문라이트>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을 읽는 이유가 뭘까? 세상에 나온지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이 책은 활자의 시대가 저무는 시점에도 여전히 읽히고 있다. 삶의 가치관에 대해 처음으로 인식해보게 되는 청소년 시기에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함께 성장하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알을 깨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데미안>과 같은 한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누군가의 인생과 세계를 간접경험 해본다. 작품의 인물들에 대해 사색하고 공감하려 할 때마다 우리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일상 속 위로를 찾기 위해서나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 성장물을 찾게 된다. 여기 또 하나의 성장기가 영화로 나왔다. 그런데 이 영화 심상치 않다. 주변에서 쉽게 보고 들을 수 없던 이야기다.
외롭고 어두운 성장기
한 소년이 또래들에게 쫓기고 있다. 그 소년은 흑인이다. 친구로는 보이지 않는 무리들은 ‘Faggot’(동성애자를 격하하여 부르는 표현)이라고 그를 불러댄다. 왜소한 체구의 소년은 잡혔다간 무차별적으로 구타를 당할 것만 같다. 비어있는 아무 집에 들어가 숨어 공포에 떨던 소년에게 한 남자가 다가간다. 소년이 사는 동네 마약 소굴의 권력자다. 사회적으로 그는 범죄자다. 하지만 소년에게 그는 매우 좋은 어른이 되어준다. 어른은 소년에게 세상 한 가운데 놓여있는 자신이 나중에 무엇이 될지는 스스로 결정하라는 말을 전해주며 강하게 세상과 맞서기를 조언한다. 그렇게 소년은 성장해나간다.
그러나 소년의 성장통은 생각보다 너무 쓰리고 아프다. 어머니는 마약에 허덕이며 자신에게 애정을 주지 않는다. 학교의 친구들은 이성애자가 아닌 자신을 따돌린다. 여전히 그는 외롭고 밝지 못 하다. 우리는 그런 그를 지켜보며 ‘쓸쓸함’ ‘외로움’이란 단어의 무게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심심한 걸 넘어 외롭고 쓸쓸하다는 말을 앞으로는 쉽게 사용해선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영화는 크게 3장으로 구성이 된다. 소년기,청년기,성인기로 나뉘어 한 인물의 성장과정을 그려낸다. 소년의 성장기라는 소재 때문에 2013년에 나온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보이후드>가 다큐멘터리처럼 한 소년을 7년간 촬영해서 만들었다면 <문라이트>는 나이대에 맞는 세 명의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했다. 또한 <보이후드>에 비해 <문라이트>의 톤은 훨씬 무겁고 진하다. 오히려 전체적인 틀은 <보이후드>에 가깝겠으나 분위기는 자비에 돌란의 <아이 킬드 마이 마더>나 <마미>에서 그려진 그것들과 유사하다. 주인공이 동성애자다 보니 <브로크백 마운틴>의 기시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된 이유에는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색감의 대비를 통한 미장센과 음악 선정 그리고 쉽게 듣지 못 했던 이야기의 힘 모두가 <문라이트>의 저력이다. 그 중에서도 연기 부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감독은 세 장의 구성에서 각기 다른 배우를 등장시키는데 <보이후드>의 한 소년이 어른이 되는 7년의 과정을 담은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세 배우는 완전히 한 캐릭터에서 합일이 되었다. 지금 극장가에 <문라이트>와 함께 걸려있는 <23 아이덴티티>같은 경우 제임스 맥어보이가 스물 세가지의 인격을 가진 인물을 연기한다. 이와 같은 경우 한 배우가 여러 모습을 보이는 뛰어난 개인기를 감상할 수 있다. 난이도의 우위를 논하긴 어렵겠으나 거꾸로 <문라이트>에서는 세 명의 배우가 똑같은 톤으로 한 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이 것 역시 굉장히 어렵고 힘든 작업일 것이다.
특히 영화 말미에 성인이 된 주인공이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는 어른의 얼굴에서 소년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이 영화의 메인 포스터를 보면서 한 인물의 얼굴이 아니라 세 인물의 얼굴이 분할되어 합쳐진 것을 뒤늦게 알고 놀란 것도 이 부분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최초의 흑인 감독상 수상 가능성은?
우리 시각으로 2월 27일(월) 오전 10시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올 해로 89회를 맞이한다. 헐리우드 영화가 중심이다보니 세계 3대 영화제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이 매년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영화제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통과 명예를 자랑하고 다문화·다인종을 기치로 삼는 미국의 대표 영화제에서 아직도 흑인이 홀대를 받고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oscarsowhite란 해쉬태그를 통해 질타를 당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또 다른 이름인 오스카 시상식의 주요 부문 후보에 백인들만 있었다는 점을 비꼰 것이다. 물론 3년 전 56회 시상식에서는 <노예 12년>이 작품상을 받으며 감독인 스티브 맥퀸이 처음으로 흑인으로서 오스카의 주인공이 된 적도 있다. 그러나 이후 다시 주인공은 백인 영화인들의 몫이 되었다. 아카데미 측은 작년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명 고심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문라이트> 같은 경우는 현재 59개의 시상식에서 158관왕에 오르며 거의 모든 영화제의 트로피를 쓸어담고 있는 중이다. 평단과 관객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있는 이 작품은 감독과 배우 모두 흑인이다. 특히 감독 베리 젠킨스는 <라라랜드>의 감독 데미언 셔젤과 가장 강력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상태다. 두 명 모두 30대의 젊은 나이에 장편 영화로는 두 번째 작품을 내놓았다는게 공통점이다.
현재 미국의 문화예술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정책에 대해 계속해서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다양한 인종의 문화예술인들이 있었기에 헐리우드와 빌보드 차트가 지금의 권위를 얻은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정책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인 골든 글로브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대배우 메릴 스트립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반대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의 선택은 어떻게 될지 주목해보는 것이 이번 시상식 최대의 관전포인트가 되겠다. <문라이트>로 아카데미 최초의 흑인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할 것인가, 아니면 <라라랜드>로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가 탄생할 것인가.
달빛 아래선 모두가 푸르다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주인공이 소년 시절 만난 마약판매상 어른이 소년에게 전해주는 대사다. 바닷가에서 수영을 마치고 달빛을 맞으며 소년은 위안을 얻는다. 그렇다. 바닷물에 비친 달빛 아래에 있으면 백인이든 흑인이든 모두 푸르게 보인다. 모두가 푸르게 보이니 그 사람이 동성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개인이기도 하지만 그 차이를 인정해줄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도 있어야한다.
틀림과 다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다름의 영역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며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지 않는가. 비단 이 문제는 인종과 성에 대한 가치관의 다양성이 있는 미국의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