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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덴 Jul 11. 2017

정말 소중한 걸 잃고 있진 않은가

[고덴의 영화읽기 9]  <싱글라이더>

*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nd when I woke, I was alone. This bird has flown.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는 나 혼자 뿐이었어. 귀여운 작은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지.)
  
비틀즈의 'Norwegian Wood' 가사 중 일부다. 존 레논이 읊조리는 저 두 마디에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영감을 받아 소설을 썼고 그 유명한 <상실의 시대>가 세상의 빛을 봤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인데 국내에서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은 이제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Norwegian Wood'란 노래 제목의 해석을 '노르웨이의 숲'인지 '노르웨이산 가구'로 해야하는지의 논쟁은 끝이 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상실의 고통을 마주하기엔 너무나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여기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너무 좋은 거래에는 항상 거짓이 있다



한 남자가 있다. 증권사에서 승진을 하며 아내와 자식을 호주로 보냈다. 능력있는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애정표현이었다. 그렇게 잊고 지냈다. 2년간 성공만을 바라보며 살던 그 남자는 본인이 무엇을 상실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결국 그는 회사의 부도를 통해 본인이 가장 잘 하는 능력이 상실되며 그제야 뒤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사람들과 재산 모두를 잃어버린 가장은 남은 유일한 자산인 가족을 보기위해 호주로 떠난다. 하지만 호주의 가족은 이미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아내의 곁에는 새로운 남자가 있고 그 남자는 아들의 새로운 아버지가 되어있었다.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호주에서 한 여자를 우연히 만난다. 여자라기엔 소녀에 더 가깝다. 한국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온 그녀는 자유와 행복을 찾아 호주에 왔지만 불행한 나날을 보낸다. 그녀 역시 전 재산을 잃으며 한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상실한다. 우연히 만난 둘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로 한다.


남자는 칙칙한 검은 정장만을 입고 있고 여자는 밝은 색의 옷을 입는다. 둘은 경제구역이 다르다. 얼마 전까지 성공한 증권맨이었던 남자와 호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모으는 여자의 사정은 다를 수밖에. 또 가족을 위해 살아가야하는 책임감을 지닌 한 가장과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20대의 청춘에게 각자의 세상은 다르게 다가온다. 


하지만 모든 게 대비되어 보이는 두 사람은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알게된다. 지나고 나서 알게되어 애석하지만 둘은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남자는 재산과 명예보다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여자는 푼돈 모아 만든 비행기값보다도 큰 희망과 웃음을 잃어버렸다.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타국에 온 ‘싱글라이더’들은 슬프다. 어쩐지 모든 게 잘 풀리는 듯 했다. ‘너무 좋은 거래에는 항상 거짓이 있다’는 남자의 대사가 폐부를 너무 깊숙이 찌른다.


상실의 고통만큼 강한 충격



관객들은 둘의 마음에 측은지심을 느낀다. 영화는 그렇게 잔잔하고 먹먹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여운을 주며 마무리될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이야기의 톤이 바뀐다. (서두에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었다는 경고가 있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호주에서 만난 소녀에게 남자는 잠시 동행해줄 것을 권한다. 영문을 모른채 따라간 여자는 경찰이 모여있고 그를 둘러싼 군중을 본다. 누군가의 시체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오열하며 모든 걸 알게된다. 땅 속에 묻혀있는 자신을 본 것이다. 남자 역시 이미 한국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호주에 있는 아내가 전해듣게 된다. 호주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둘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본인들이 무엇을 잃고 있었는지 알게되었다. 영화의 톤이 급격히 바뀌며 관객들은 당황한다. <식스센스>로 대변되는 유령 설정의 반전 영화로 진행될 줄은 예상하지 못 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식스센스>의 감독을 맡은 M.나이트 샤말란의 <23 아이덴티티>란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점도 흥미롭다.   


이병헌의 힘



아마 김민희와 함께 우리나라 배우 중 가장 영화 외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명확한 사실 관계에 대한 다른 시선들로 인해 배우 이병헌은 늘 도마에 오른다. 그의 사람됨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지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불신은 영화 안에서만큼은 모두 잠식된다. 연기에서만큼은 확실히 그는 불가침의 성역에 있는 존재다.  


<싱글라이더>는 각본과 연출의 반전성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힘이 가장 중심이나 과장을 조금 얹는다면 이병헌의 연기가 없이는 이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병헌은 잔잔하고 표정없는 도시인의 회색 낯빛을 보이다 어느새 내재된 회한과 울분을 폭발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선보인다. 이 연기 장인은 <번지점프를 하다> <달콤한 인생>를 통해 보여준 내면 연기의 정점을 <싱글 라이더>에서 찍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사생활의 가십을 떠나 그가 최근 다작을 하고 있어서 기쁜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놓치고 있지 않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그 꽃' - 고은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시다. 100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의 이야기를 위대한 시인은 아홉 단어로 응축했다. 비단 산을 오르내리며 놓치게 되는 꽃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싱글라이더들은 하늘만 바라보며 날아올라 비행기에서 구름 위를 떠다닐 때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땅으로 내려와보니 모든 게 보였다.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됐다. 한 편으로는 내려가서라도 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는 그마저도 끝내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날이 따뜻해졌다. 새싹과 꽃봉오리가 움트기 시작한다. 모든 수많은 싱글라이더들은 이 꽃들이 지고 나서야 그것들을 그리워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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