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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덴 Jul 11. 2017

대한민국의 미래, 8명의 '성난 사람들'에게 달렸다

[고덴의 영화읽기 13]  <12명의 성난 사람들>

십여 년 전에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한 증권사의 광고가 문득 떠오른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군중들이 ‘예’ 또는 ‘아니오’를 외칠 때 홀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던 배우 유오성의 짧은 외마디는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 우리 사회가 ‘다름’은 더 이상 ‘틀림’이 아니라는 인식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기에, 요즘에서야 똑같은 광고가 나온다 해도 처음만큼의 충격파가 온전히 전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개성’ ‘소신’ ‘소수’란 단어를 선택하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11명의 ‘예’와 1명의 ‘아니오’



한 명의 용기로 이 영화는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인 1957년에 나온 고전 명작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죄로 법정에 선 한 소년이 있다. 영화에서 묘사되지는 않지만 법정의 정황에 따르면 그의 유죄 선고는 확실해 보인다. 최종 판결을 위해 남은 것은 12명의 배심원 판결이다. 그들이 만장일치의 결론만 내린다면 소년은 형장의 이슬이 된다. (참고로 미국은 배심제가 있어서 배심원으로 선발된 시민은 의무적으로 재판에 참여해 범죄 유무를 직접 판단한다. 배심원들의 평결은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 우리나라는 2008년 배심제의 모양을 따온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적용했다.)  


배심원들이 모였다. 모두들 소년의 유죄 판결을 지지하며 사건을 얼른 마무리하려 한다. 그 때 한 명이 모두가 ‘예’를 외칠 때 ‘아니오’라고 말한다. 11 대 1의 상황. 만장일치가 아니면 판결은 무효가 된다. 더운 날씨 속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후덥지근한 방에서 나머지 11명은 납득하지 못 하고 짜증을 낸다. 어쩔 수 없이 긴 토론이 시작됐다. 그리고 무죄를 주장했던 한 명은 신중하고 논리적인 언술로 법정에서 나온 증거들의 빈약함에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며 한 명씩 설득에 성공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에 점점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과연 소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명품 법정 드라마



이 영화는 201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작품 활동에 열을 올렸던 명감독 시드니 루멧의 장편 데뷔작이다. 당시 30대의 시드니 루멧은 첫 스크린 데뷔작에서 당대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인 헨리 폰다를 기용해 모두의 의견에 반대를 던지는 인물로 등장시키고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가게 한다. 두 명은 결국 명작을 탄생시켰고 베를린 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황금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영화 속에는 여러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대개 일상생활 속에서도 대화를 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 사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 알맹이는 없이 목소리만 크게 내는 사람, 줏대 없이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사람, 대화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 등이 있는데 영화 속 12명의 배심원에 이 모든 유형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는 이런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토론을 하는 모습을 통해 의견의 합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과정을 100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 속에서 숨쉴 틈 없이 빽빽한 대사로 메워나간다. 


영화는 오프닝의 재판 장면과 엔딩의 법원 밖 계단 장면 그리고 중간의 화장실에서의 짤막한 대화를 제외하면 모든 장면이 배심원들이 토론을 하는 좁은 방에서 이루어진다. 좁은 방에서 찍은 장면을 제외한 세 장면의 시간을 합쳐봤자 5분이 안 되니 영화 전체를 한 장소에서 찍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다양한 미장센을 통한 시각적 만족감을 포기한 용기있는 연출이었다. 믿을 수 있는 건 대본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감독의 뚝심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 60년 전 작품이라기엔 웬만한 현대 영화의 서스펜스를 상회한다. 말싸움도 액션영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면 최고의 액션 영화로 꼽고 싶을 정도다. 


8명의 성난 사람들



영화 속 12명의 배심원은 ‘성난 사람들(Angry men)'이라는 제목 하에 묶여있다. 단순히 그들이 감정적으로 화가 났다는 표현이 아니다. 그들의 심판으로 한 소년이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에 신중했고 예민했고 복잡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영화 밖 현실의 우리 사회는 이제 ’8명의 성난 사람들‘에게 운명이 달려있다. 


모든 사람들이 헌법재판소를 주시하고 있다. 이제 곧 8명의 헌법재판관들은 평의를 통해 한 국가 지도자의 탄핵 여부를 도출해낼 것이다. 한 인물의 유·무죄 여부를 따지는 과정이기에 영화 속 배심원 제도와 헌재의 심판은 흡사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가 가지는 경중의 차이와 사회적 파급은 크게 다르다. 후자의 판결은 그 결과에 따라 한 나라의 미래가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밝혀진 ‘사실’들에 의해 유죄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피의자가 결국 무죄 선고를 받는다면 그 사회의 정의는 무너졌다고 단언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현재 헌법재판소의 분위기는 알 수 없으나 탄핵이 인용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면, 부디 영화의 과정처럼 다수의 의견이 한 명에 의해 뒤집히는 경우가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영화적 재미는 치열한 토론 과정에 있지만 메시지는 합리적 의심을 통해 죄의 유무를 가려내고 응당한 대우를 내렸다는 점에 있다. 죄의 유무 여부는 밝혀졌다. 이제는 합당한 대우가 필요한 시점이다. 8명의 성난 사람들은 순리대로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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