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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덴 Jul 11. 2017

복싱으로 가장한 휴먼 드라마,그들은 그렇게 가족이 된다

[고덴의 영화읽기 15]  <밀리언 달러 베이비>

혼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는 ‘혼밥’과 ‘혼술’이 대세인 시대다. 밥과 술을 넘어 생활 전반을 혼자서 즐기는 ‘혼자족’들이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1인 가구의 비중은 전체 가구 중 27.2%를 차지했다. 증가 추이를 보면 5년 내에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집이 될 확률이 높다. 1990년의 1인 가구 비중이 9.0%에 불과했으니 근 25년만에 주거 풍속도가 크게 바뀐 셈이다. 


이 변화는 어차피 함께 있어도 외로울 바에 혼자있음의 미학을 느끼겠다는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일까, 아니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게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를 반영하는 것일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홀로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의 또 다른 말 ‘식구’는 함께 밥을 먹는 입을 뜻한다. 식구가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이다.


“서른두 살이 늦은 거면 저한테 아무 것도 없는 거에요”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한 노인이 있다. 그도 혼자 살고 있다. 매주 딸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돌아오는 것은 답장이 아닌 그대로 반송되어 돌아오는 편지. 그에게는 가족이 없다. 그는 과거에 뛰어난 컷 맨(복싱에서 상처가 나면 지혈을 하는 보조자)이었고 지금은 챔피언이 될 선수를 키우는 훌륭한 트레이너다. 하지만 매니저로서는 성공적이지 못 하다. 단점을 보완시키고 더 성장시키기 위해 제자의 챔피언전을 조금씩 미루던 그의 의도와 달리 제자는 결국 그를 떠나 성공에 더 가까운 매니저를 찾아간다. 결국 제자는 챔피언이 되었다. 제자를 뺏긴 노(老)트레이너는 허탈함에 삶의 의욕을 잊어버린다. 


그 때 체육관을 찾아온 한 여자. 권투를 시작하기엔 늦은 서른이 넘은 식당 종업원이다. 여자는 대뜸 노인에게 자신을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난 계집애는 훈련시키지 않는다.”


 부탁에 돌아온 대답은 모욕에 가까웠다. 또 권투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며 그녀를 돌려세운다. 하지만 여자는 악바리였다. 게다가 지나치게 긍정적이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와 형제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 하는 그녀에게 남은 것은 복싱에 대한 열정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식구가 없는 사람이었다. 서른둘이란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끈질긴 노력과 구애에 결국 노인은 그녀를 선수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여자 보통 선수가 아니었다. 악착같이 연습하더니 순식간에 성장했다. 트레이너도 놀란다. 거의 모든 경기를 1라운드에 KO로 끝내버린다. 너무 강해 상대가 경기하기를 꺼려 대전 자체가 잡히지 않는 상황. 결국 그녀는 복싱을 한지 1년 반만에 챔피언과 시합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경기를 하지 말아야 했을까. 둘의 승승장구에 문제가 생겨버린다. 그 것도 아주 큰 문제가 생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거대한 산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2005년 제 77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 중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남우조연상을 획득하며 그 해의 압도적인 주인공이 된 영화였다. 그 중심엔 연출과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었다. 


잠깐 헐리우드의 전설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짚고 넘어가자. 스파게티 웨스턴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서 1950년대 영화계에 등장해 단역을 전전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명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발탁되어 일명 무법자 3부작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로 6~70년대 헐리우드의 특급 스타가 된다. 이후 그의 7~80년대 대표 시리즈인 <더티 해리>로 성공 가도를 계속 달렸고 90년대 이후부터는 드라마성이 짙은 작품의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 데뷔 이후 별다른 침체기를 겪지 않은 매우 드문 케이스이며 1993년에는 <용서받지 못한 자>로, 2005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한 해에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챙기며 헐리우드에서 배우와 감독으로 가장 성공한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성공가도는 아직 멈추지 않고 현재진행형인 상태다.


* 참고로 ‘스파게티 웨스턴’은 미국식 권선징악의 정통 서부극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의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고 이야기보다는 액션에 좀 더 치중을 한 이탈리아식 서부극 장르를 칭하는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의 영화평론가가 붙인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서 세계적인 통칭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르는 게 맞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말고도 여자 주인공을 맡은 힐러리 스왱크에게 평생 한 번도 받기 힘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째로 안겨줬고, 미국의 국민배우이자 흑인 배우의 가장 맏형 격인 모건 프리먼에게도 첫 오스카 트로피를 전해줬다. 지금 국내 극장가에 재개봉했으니 대배우들의 협연을 다시 감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톤이 바뀐다. <록키>처럼 챔피언이 되는 과정을 그리며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전해줄 것만 같던 영화에 더 이상 복싱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이 영화는 복싱영화를 가장한 휴먼 드라마였다. 스승은 제자가 링에 오르기 전 항상 유념해야할 것을 상기시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알아야한다는 것. 상대에게 공격을 하기 전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불의의 일로 제자는 자신을 보호하지 못 했고, 노인은 이제 스승이 아닌 아버지가 되어 준다.


이제는 아버지가 되어버린 스승은 제자가 챔피언이 되길 기원하며 그녀의 복싱가운을 특수제작했었다. 가운에는 ‘모쿠슈라’라는 게일어(켈트족의 언어)가 적혀있었다. 제자는 뜻을 묻지만 스승은 챔피언이 되면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결국 제자는 영화 말미에 그 뜻을 알게되며 큰 위로를 받게된다. (모쿠슈라의 뜻은 작품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아직 영화를 보지 못 한 관객을 위해 여기서는 밝히지 않도록 하겠다)


혈육이 아닌 가족이 진심을 담아 전해주는 말인 모쿠슈라. 그리고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는 말. 왠지 그 충고는 가족과 함께하지 못 하고 험한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나라의 혼자족들에게도 유효한 것만 같다. 혼자가 되었지만 결국 우리에게는 가족이나 혈연관계를 넘어서는 누군가가 함께해야만 인생이 외롭지 않다는 것을 잊지말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한 때는 누군가에게 ‘밀리언 달러 베이비’(백만불짜리 아기)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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