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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덴 Jul 11. 2017

이 시대의 모든 부녀를 위한 웃픈 코미디

[고덴의 영화읽기 18]  <토니 에드만>

웃기면서도 슬픈 상태를 나타내는 말인 ‘웃프다’. 이는 조울증의 증세를 말하는 병리학적 개념의 용어가 아니다. 가끔 살다보면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웃음이 나는 경우가 있질 않나. 그런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인 ‘웃프다’라는 형용사를 이제는 신조어를 넘어 정식 표준어로 채택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웃기면서 슬픈 일들이 많다.

     

괴짜 아버지와 다 커버린 딸


     

여기 너무도 ‘웃픈’ 한 독일 부녀의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매사가 진지하지 않다. 어떻게하면 더 재미있게 장난을 칠 수 있을지만 고민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은 변장. 항상 주머니엔 변장을 할 수 있는 소품들을 들고 다닌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도 택배를 받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이 택배가 자신의 동생 것이라며 택배 기사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어설픈 변장을 하고서 있지도 않은 동생의 흉내를 낸다. 딸은 어린 시절에는 그런 유쾌한 아버지가 좋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도 커버린 딸은 더 이상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다. 아버지는 아직도 딸을 네 살 배기로 보고 있으나 딸은 되레 지금은 아버지가 너무 유치해 보인다. 기업 컨설턴트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딸은 본인의 일과 삶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가혹할지는 모르겠으나 심지어 가족이란 존재가 이 세상에 없어도 전혀 무방해 보일 정도로 차갑다. 아버지는 그런 딸이 아무래도 걱정되어 보이나보다. 위로의 뜻으로 아버지는 몰래 딸의 직장으로 찾아간다. 역시나 변장을 하고서.

     

끝나지 않는 거대한 장난


     

아버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예고도 없이 딸의 앞에 나타난다. 너무도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예민해진 딸은 그런 아버지를 모른 체한다. 내색은 안 했지만 그런 아버지가 너무도 창피하다. 그래도 독일에서 자신을 보기위해 루마니아까지 온 아버지를 냉대할 수만은 없었다. 딸은 아버지를 데리고 다니며 최소한의 예의는 지킨다. 하지만 둘은 이미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 한다. 


일밖에 모르고 사는 딸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조금이나마 기쁠까 표현했던 나름의 애정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고도 네가 인간이냐!” 결국 아버지는 일갈을 한 채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로 한다. 결국 그 역시 딸을 위함이었으리라.


균열이 생기고 벌어진 상처를 봉합하려 했던 아버지의 시도가 무너지는 이 순간에 사실상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독일로 돌아간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변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본래 이름인 빈프리트가 아니라 ‘토니 에드만’이란 가명을 쓰며 딸의 지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딸에게도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거대한 장난과 농담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딸은 정도를 넘어선 장난에 모든 것이 무너질 것만 같다. 이 남자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웃기면서 울리는 코미디


시종일관 <토니 에드만>은 아버지의 거짓 가면놀이로 인한 장난과 그를 지켜보는 딸의 한심함과 분노가 전체적인 리듬을 유지한다. 아버지는 항상 몰래 딸의 주변에 나타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독일 대사나 루마니아 테니스 스타의 코치라는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그러나 이 무모한 아버지의 장난은 결국엔 차가운 딸의 성을 무너뜨리기 위함이었고, 종국에는 딸은 아버지에게 와락 안기며 그의 진심과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딸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후반부의 장면은 직접 영화관에서 확인하길 추천한다. 영화는 너무도 감동적인 그 상황을 역시나 웃기게 그렸다. 이토록 ‘웃플’ 수가.


왜 이 독일 코미디 영화가 진지함으로 관철된 칸 영화제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았는지, 2010년 이후 사실상 은퇴했다고도 볼 수 있는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잭 니콜슨이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며 컴백하겠다고 결정했는지는 16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진행되는 토니 에드만의 장난을 봐야만이 이해할 수 있다. 웃음 뒤에 남는 잔잔한 여진이 꽤나 오래 간다. 괴수 영화와도 같은 메인 포스터의 장면이 실은 얼마나 감동적인지도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딸은 아버지의 겉잡을 수 없이 진행된 장난으로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없이 휘트니 휴스턴의 <The Greatest Love of All>을 부르게 된다. 얼마나 부르기 싫었을까.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졌다. 노래가 시작된다. 진지한 노래인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계속해서 피식거린다. 딸이 진지하게 열창할수록 그 실소의 강도는 높아진다. 결국 관객들은 그 대히트곡의 가사 속에서 딸의 진심을 발견한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가족이 되었다.


“Becaus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happening to me” (왜냐면 가장 위대한 사랑이 내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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