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동안은 생일이 되면 자매들끼리 누가누가 제일 먼저 축하 연락을 하느냐를 두고 은근한 경쟁을 벌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연락을 해도 더 부지런히 일어난 자매에게 선수를 빼앗기곤 합니다. 그래서 아예 밤 12시가 되자마자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잠드는 일이 잦았지요. 잠을 참아가며 밤 12시가 되면 1등으로 축하 연락을 남기고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늦은 밤까지 깨어 있는 것이 점점 힘들어질 무렵 각종 인터넷 사이트의 기계적인 축하메시지에 밀려서 이 경쟁도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올해 제 생일을 가장 먼저 축하해 준 것은 카카오였습니다. 무려 1주일 전부터 생일 축하한다고 설레발을 떨었죠. 1주일동안 선물도 주더군요. 고작 몇 원에서 십몇 원이었지만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생일 전야제도 아닌 마치 페스티벌 기간처럼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 저는 의외로 이벤트나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들은 잘 챙기지 못합니다. 여우보다는 곰 같은 성격이기도 하고 예고없는 서프라이즈 같은 이벤트를 썩 좋아하지 않다 보니 주변사람들에게도 그런 일들을 잘 하지 않게 됩니다. 담백하다 못해 좀 무뚝뚝하고 덤덤한 편입니다. 아마도 '아기자기함'과 '이벤트를 좋아하는 성향'은 꼭 연결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 남편은 아기자기하지도 않지만 이벤트가 없기로는 저보다 더 합니다. 부부가 그렇다 보니 연애하는 동안에도 100일이니 1주년이니 그런 것들을 챙겨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살면서 살짝, 아주 살짝 아쉽기는 하더군요. 어느 날 남편이 고민 아닌 고민을 말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여자친구를 사귈 때 이벤트나 서프라이즈 정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저리 안 챙기다가 차이기라도 하면 어쩌냐고. 그래서 한동안은 또 열심히 생일 이벤트를 해봤습니다. 풍선을 불어 천장에 양면테이프로 붙이고 벽을 장식하고 해피버스데이 플래그도 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너무 피곤하더군요. 남편은 출퇴근으로 바쁘고 이벤트를 챙기는 것은 오로지 저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혼자서 이벤트 월을 장식하고, 생일 상을 차리고 하는 일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1년 정도 하고 그만 두었습니다. 이벤트가 없어서 헤어질 사이였다면 각자 성향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지게 되겠지요. 우리 부부처럼요.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며칠전부터 아이들은 갖고 싶은게 무어냐,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물어왔습니다. 케이크는 어떤 걸로 준비하면 좋을지까지 꼼꼼히 챙겨 물어왔지요. 원래도 이벤트를 잘 챙기지 않는 성격인데 해가 갈수록 더해져서 이제는 거의 귀찮은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일상은 차리지 않고 대신 외식을 하거나 맛있는 배달음식을 먹기로 가족과 합의를 봤습니다. 사실 축하를 해주는 고마운 마음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오히려 삼복더위에 저를 낳고 고생하셨을 '엄마의 날'이라는 생각이 더 커서 엄마 생각만 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기껏 다 괜찮다고 사양을 해 놓고 생일이라는 게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해 놓고도 막상 아쉬운 순간에 유치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내 생일인데'하는 그런 마음이요. 기껏 어제까지 생일 이야기를 함께 해놓고 정작 오늘 저녁이 되어가도록 축하 한마디 없는 큰 아이에게 서운함이 스미고, 하필 오늘 남편까지 쉬는 날이라 괜히 제 신경을 말 한마디에 속이상합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오늘 내 생일인데...'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괜찮다고 해놓고 괜찮지 않은 마음요.
이런 아이러니한 마음의 본질은 아마도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인정받고 싶은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지나온 날들 중에서 '그래도 오늘만큼은 특별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올라오는가 봅니다. 유치하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다가도 곧 마음을 돌려봅니다. 나는 정말 괜찮은 것인지 다시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애써 그 작은 욕구를 눌러온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아이러니 속에 갇히지 말고 차라리 솔직해 지는 건 어때?" 그리고 조심스레 결론을 내려봅니다. 나는 내 존재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있구나. 그러니 괜찮지 않은 마음은 표현해도 괜찮겠구나.
-이만 총총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