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1일
직장인들에게 매 월 가장 행복한 날은 뭐니 뭐니 해도 월급날이다. 잠깐 스쳐갈지라도 통장에 찍힌 월급은 한 달간의 내가 들인 노동에 대한 대가이자 사회인으로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화폐적인 수단이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꿋꿋하게 버틴 나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보상인 것이다.
그러나 육아 휴직을 하고 있는 지금, 내가 매월 누렸던 21일의 기쁨이 사라졌다. 물론 21일에 남편은 자기 월급의 대부분을 나에게 이체해 주기에 월급을 주는 주체가 회사에서 남편으로 바뀐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면 된다. 하지만 정확한 금액으로 사정하기 어려운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내 몫의 대가는 각종 생활비와 아이들 학원비, 기타 등등의 비용과 한 데 섞여서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나를 위한 소비는 인색해지게 되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휴직의 기쁨은 온데간데없고 화장기 없는 우울한 얼굴의 한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육아휴직이 '나'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나약한 정신상태로 퇴사를 꿈꾸다니... 퇴사 후의 장밋빛 삶이 그려져야 '꿈꾼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지금 상태라면 퇴사는 곧 우울증에 걸린 집순이 주부 예약이었다.
육아휴직 후 거창한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지금은 뭔가를 해야 할 때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일단 그 시작은 운동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집 근처 운동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곳들을 선택지에 놓고 고민했다. 골프는 레슨비도 만만치 않지만 필드에 나갈 것까지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 헬스 P.T는 실제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운동임을 머리로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도통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 패스. 요가는 과거 한 달 배우고는 뻣뻣한 나와는 도무지 맞지 않는 운동이라 생각했기에 넘어가고, 필라테스도 같은 이유로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고민되었던 동네 탁구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할아버지 관장님의 걸걸한 목소리와 두루뭉술한 말투에서 신뢰감이 급 하락하여 고민해 보겠다고만 말씀드리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 동아줄 같은 마음으로 동네 실내테니스장 연락처에 문자를 남겼다. 테니스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테린이이자 운동 배우기는 10년 만인 초짜 강습생(물론 아이 낳고 지난 10년간 중간중간 숨쉬기 운동과 걷기, 오름 등산 등은 꾸준히? 해 온 1인이다)이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평일에 어딘가 가야 할 곳이 있고 배울 일이 있다는 게 나의 삶에 조그마한 활력이 되어 주길 바라본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을 알차게 잘 보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이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초나 분단위로 나눠서 하루 24시간을 타이트하게 보내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나를 위해 쓸지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여 실천까지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요새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유혹은 너무나도 많고 쉽고 편한 선택을 하는 건 정말이지 간단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고 나니 분명 그 중간중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알차게 보낸 부분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일 게으르게 지내다가 엉망진창으로 하루를 날린 기분이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게 되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그래서 21일의 월급과 같은 외부적 요인을 통해 나의 행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려면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인정하며 위로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운동을 통해 신체적인 건강과 자신감을 찾고 정신적으로 좋은 생각을 반복하며 일상의 꾸준함을 유지하는 게 '나'라는 인간이 한층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