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꿈꾸는 육아휴직자의 이야기

9. 12월 31일

by 정서우


창 밖의 햇살이 참으로 따사롭다. 창문 곁에만 가도 차가운 바깥공기로 인해 부르르 몸이 떨리는 겨울이지만, 실내에서 바라본 오늘의 햇살은 참으로 포근하고 넉넉하다.


오늘은 12월 31일, 2025년의 마지막 날이다. 언제부턴가 한 해의 마지막 날 그리고 새해의 첫날이 그다지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뭐랄까, 나이 듦에 대한 기대가 없달까. 그저 한 해, 한 해 특별한 일 없이 소소하게 행복하고 건강하기만을, 그래서 보통의 나날을 보낼 수 있기만을 조용히 바라게 된다. 실은 그 '보통의 행복'이 얼마나 값지고 대단한 것인지, 그래서 그 행복을 얻으려면 수면 아래 백조의 다리처럼 보이지 않는 부단한 노력과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보통의 행복'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에 대해 반문했을 때, 부끄럽게도 나의 허물과 낭비해 버린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래서 더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니, 새해니 하는 날에 의미를 두기 어려웠던 것 같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부끄러우니까.


오늘 아침에 첫째가 학교에 가며 오늘은 매. 우. 중요한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응? 무슨 중요한 날인데?"하고 물어보니, 엄마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은 한 해가 저물어가는 마지막 날이잖아. 올 한 해 동안 열심히 학교 다닌 나에게 고생했다고 칭찬하고, 내년에도 파이팅 하자고 다짐해야 하는 날이거든?" 아뿔싸, 엄마보다 나은 자식의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한 해 동안 물론 부족한 부분도, 잘못한 점들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여기서 '그런대로'라고 표현한 것은 만족의 기준치가 높은 나 자신에게 주는 약간의 불만의 표현이랄까?) 육아휴직이라는 좋은 제도로 인해 아이들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옆에 있을 수 있었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학교와 학원에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다시 복직을 하게 되면 출근시간에 허덕이며 아침에 겨우 손인사를 하고 바삐 내달리게 될 테고, 아이들은 학원차에 실려서 여기저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깜깜해질 무렵에야 집에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꿈꾸는 퇴사를 하게 된다면 지지고 볶는 엄마와의 시간이 더 연장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다가올 복직과 퇴사라는 미래는 제쳐두고, 휴직이라는 한 해 동안 열심히 산 나에게 고생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그리고 내년에도 파이팅 해서 연장된 휴직의 시간을 의미 있게 잘 보내고 싶다. 이런 다짐의 시간이 없다면 나는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보내게 되고, 다가올 내일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첫째의 말처럼 연말에는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에는 더 나은 날을 보내기 위해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


자식을 키우며 당연한 것들을 다시 배우고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성장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히 '보통의 행복'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어제의 나는 과거이고 내일의 나는 2026년 새해의 나이니깐, 오늘은 어제보다 성장했고 내일을 기대하는 그런 '보통의 행복'한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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