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꿈꾸는 육아휴직자의 이야기

3. 주말농장

by 정서우

퇴사 후 뭘 하며 먹고살 수 있을까?

퇴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99% 이런 질문이 항상 머릿속에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육아휴직의 종료 시점에 복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은 50여 년 인생동안 뭘 하며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늘 머릿속에 달고 살고 있다. 남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명예퇴직이든 퇴사든 하고 나서 우리 성격에 맞지 않는 자영업은 절대 하지 말자고 확답받다가, 설마 이래놓고 밭농사든 귤농사짓는 건 아니지? 라며 남편에게 괜히 가늘게 실눈을 흘기곤 한다.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다시 시작한 '주말농장' 때문이다.


3년 전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해 가르칠 겸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아파트 후문에 자리하고 있는 주말농장은, 그 어느 주말농장들보다 접근성이 용이했고 첫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관심을 두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장소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부모들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들의 식물에 대한 관심은 오직 모종을 심을 때와 수확하는 때에만 반짝였을 뿐 성장 그 자체에는 심드렁하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주말농장은 온전히 남편의 취미생활로 전락하여 열심히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돌보는 모든 일이 한 명의 몫이 되었다. 그 사이에 엄마인 나는 뭘 했냐고? 나의 반짝이는 두 눈은 식물에 관해서는 초록은 풀이요, 갈색은 흙이구나 정도밖에 구별할 줄 모르는 까막눈이었고 애초에 채소를 입에 넣을 줄만 알았지 키워내는 것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1년의 주말농장을 마감하고 우리는 2여 년간 제주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의 2년은 또 어떠했는가? 제주에서의 삶은 한마디로 농업과 어업의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으로, 체험! 삶의 현장이 아니라 진짜로 1차 산업의 향연 그 자체였다. 귤 농장을 운영하시는 시아버님과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 시어머님과 함께 산다는 건, 두 분이 평생 살아온 삶에 며느리와 손자들이 살짝 발만 담글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텃밭에서 잘 가꾼 야채를 바로 뽑아서 반찬을 만들고, 바다에서 갓 잡아온 보말과 해삼은 든든한 저녁거리 그 자체였다. 그렇게 2년을 꽉꽉 채워 제주의 진면목을 경험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이번 주말농장은 초등학생이 된 두 아이들을 위한다는 건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고, 엄마, 아빠의 채식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철저히 성인들 위주의 주말농장이었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가는지 여기저기 고장 나는 몸뚱이와 어깨를 짓누르는 이 묵직한 피로감에서 벗어나고자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의 섭취를 갈망했다. 더군다나 직전 제주생활동안 몸에 밴 신선한 채소에 대한 욕구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물건으로는 충분히 충족되지 않았다. 그렇게 주말농장을 신청하고 밭을 배정받은 뒤, 퇴비랑 비료를 뿌려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2주의 시간이 흐른 뒤 상추며 들깨, 브로콜리, 양배추 등의 모종을 잔뜩 구매하여 잘 만들어놓은 이랑 위에 적당한 간격으로 모종들을 심었다. 맙소사! 어느새 나도 모르게 농부아내의 코스프레를 하며 새로 산 파랑 장화를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는 둥, 다른 밭에 누가 뭘 잘 심었나 관찰하며 시기하는 둥 새로운 취미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아뿔싸! 이건 정말 휴직하며 내가 원했던 그런 그림이 아닌 거 같은데. 비까 번쩍 빛나는 도시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생 다시 오지 않을 30대의 마지막에, 황금 같은 평일 백수의 시간에 농사라니... 나는 잠깐이나마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농사일이야 말로 가장 정직한 노동이 아닌가? 내가 밭을 일구고 모종을 심고 가꾸며 노력을 들인 만큼, 나에게 농작물이라는 결과를 가져다준다. 물론 날씨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이니, 내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에 합당한 수확물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로 가장 정직하고 값진 노동임에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1차 산업의 가성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들이는 노력 대비 결과물이 얼마나 하찮은지 나도 모르게 폄훼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울 만큼 배우고 보통인의 사고방식을 갖고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내가 얼마나 오만한 사람인건지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 나도 제2의 인생을 살아보는 거다. 내가 아이들 말고 뭔가 살아있는 것을 길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이 주말농장을 통해 도전해보려 한다. 혹시 아나? 내가 청년농부 신드롬의 뒤를 잇는 줌마농부가 되어 주말농장계를 평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음 글이 농사에 대한 이야기가 될지, 전혀 다른 소재에 대한 작은 단상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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