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갈빵 Oct 04. 2022

[맛동산 시리즈07] 망원동에서-(1)

망원시장, 홍두깨 손칼국수, 소금집, 하나길

0. 망원동

9월의 맛동산이 찾아왔다. 7월의 삼각지 이후였다. 하늘이 가득히 보일 정도의 낮은 건물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망원이다. 시장이 있는데다 군데군데 가지각색 맛집 또한 속속들이 존재한다. 잘 찾으면 많고 못 찾으면 또 뭐가 없는 곳일 수도 있다. 준회원은 비행을 마치고 뒤늦게 합류한다고 했다. 그 시간 즈음 게스트도 찾아온다고 했다. 먼저 회장님과 총무님을 만나기로 했다.



1. 망원시장

사과가 어쩜 저리 빨갛고 윤기가 흐를까. 내 얼굴도 저 사과처럼 이쁘기만 했으면 좋겠다. 시장엔 참 먹을 것이 많았다. 그래서 땅따먹기하듯 차례대로 들르고 싶었다. 낮술도 땡겼다. 그래도 일단 배부터. 시장은 뭐니뭐니해도 칼국수다.



1-1. 홍두깨 손칼국수

내가 좋아하는 시장 칼국수의 특징. 값이 5000원이 넘지 않는다. 양이 많다. 면발이 우둘투둘 제각각이며 쫄깃하다. 그래서 식감이 좋다. 중국산 김치를 쓴다. 오히려 좋다. 양념장도 따로 준다. 더욱이 좋다. 음식은 금방 나왔고 우리도 후루룩 면을 빨아들였다. 입에 가득 넣은 면을 오물거리는 순간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헉? 왜 맛있는 거지? 4500원 칼국수가 이렇게나 맛있어도 되는 건가? 왜 양이 많은 거지? 왜 면발이 살아있는 거야? 짧은 순간에 '이 가격에 이 맛?'이라는 생각이 후루룩 빨려오는 면발처럼 머리속에서 휙휙 지나가곤 했다. 비싸니 맛있는 음식도 많지만 이처럼 가격이 푸근해서 더 맛있는 음식도 있는 법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3분의 2를 먹었겠다, '무지매움' 양념장을 넣어본다. 호기롭게 두 스푼.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지만 감칠맛 사악 돌게 맵다. 죽자고 달려들 정도가 아니라 마무리를 화끈하게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2. 맥주 슬러시와 바삭마차

본래 우이락이라는 곳에서 고추튀김에 막걸리를 살짝 곁들이려 했다. 대낮에 사람이 북적이기에 그리 뜨거운 곳은 지나칠 수 없겠구나 싶었는데 웨이팅이 잔뜩 걸려있었다. 아무래도 낮술의 묘미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으리라. 그리하여 여기저기 걷다 시원하게 맥주 슬러시 하나를 뽑게 되었다. 맛이 뛰어나지 않지만 기분 내기에는 좋은 아이템! 튀김 좋아하는 회장님의 지시에 따라 바삭마차 앞으로 가 두가지 튀김을 받아내었다. 어디 앉아 먹을 곳이 없었기에 킵해두는 방향으로. 왜냐하면 합숙 계획이 있으므로.



2. 소금집 델리

빵을 즐기는 편은 아닌데 샌드위치는 좋아한다. 개중에 편의점에서 파는 에그햄 샌드위치 정도를 셀렉하는데, 세트로 기획된 오렌지 주스와 페어링하면 파리의 브런치 카페 부럽지 않다. 각설, 언젠가 잠봉뵈르라는 샌드위치를 보았을 때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모습에 혹한 경험이 있다. 언젠가 저거 한번 먹어봐야지 했으나 뭐 기회가 없었고 이날에야 설탕집 대신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흡사 놈놈놈 엔딩씬에서처럼 서로를 찍고 있는 사이 좋은 우리, 총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웨이팅이 조금 있었다. 따사로운 낮을 즐기며 나는솔로와 환승연애 이야기로 기다림을 채웠다.

잠봉뵈르 샌드위치와 햄 스테이크 플래터

칼국수와 군것질 때문이었을까. 큰 기대 때문이었을까. 당시엔 맛있다를 연신 뱉어가며 씹었는데 지금은 딱히 특별한 기억이 아닌 듯 싶다. 그럼에도 나른한 오후에 햇살 가득 받으며 이런 물 건넌 냄새나는 음식을 앞에 두니 또 다른 재미와 맛이 있긴 있겠다 싶다.

항상 수고해주시는 총무님과 무슨 일인지 맥주 대신 고른 제로콜라, 특별출연해주신 유병재 그리고 그의 매니저 유규선.


3. 하나길

달리기 위해 쉬어갈 때. 맛동산의 최근 추세를 분석하자면 중간에 꼭 카페를 들러 수다 시간을 갖는다. 술 안 먹고 잘 떠드는 김용만, 김수용, 지석진, 유재석의 조동아리가 연상된다. 물론 우린 술을 마시기 위해 쉬어가지만. 하나길은 필자의 초등학교 동창이 오빠분과 오빠분의 아내분과 함께 꾸려가는 카페다. 동네에 있을 때 한번 못가보고선 망원으로 이전한 후에야 찾아오게 되었다. 들어갈 때부터 기분이 퍽 좋았다.

통창이 햇빛을 받아주어 따스하기도 하고 시야를 넓혀주어 시원하기도 했다.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공간을 이루는 색들이 편안했다. 당황하지 않고 커피를 주문했다.

하나길의 시그니쳐 '하나길 초콜릿 드링크'

회장님이 주문한 시그니쳐 메뉴 초콜릿 드링크의  진함은 거즌 데뷔 30년차 가수의 목소리 같았다. 어쩜 저리 부드러우면서도 진할까.  속으로 해장으로도  맞겠다 생각했다. 숙취가 금방 녹아내리지 않을까나. 요즘에야 겨우 나에게 맞는 커피가 이건가 저건가 생각해보곤 하는데 하나길의 커피는 나에게 맞는 커피였다. 뭐랄까, 무겁지 않고 고소하달까. 잘못 말하면 고소할 수도 있으니 모르는 이야기는 집어치우도록 하겠다. 뽀나스로 주신 생초콜릿. 아까도 말했다시피  진하기가 보통이 아니라   싫어하는 내가 먹어봐도  고급스럽게 달다? 실크나 벨벳같은 그런. 함께 나오는 스틱과 땅콩 슬라이스는 초콜릿을 다양하게 즐길  있는 센스 가득찬 곁들임이었고,   오렌지 껍질 말린 것이 좋았다. 꼬돌꼬돌한 식감에 단맛도  것이 요물이 틀림없었다. 디저트를 모르지만 디저트의 세계 또한 평양냉면의 면과 육수, 고명만큼이나 다양하 다양한 디테일이 매력이 되는 세상인  싶었다.

아참! 음악도 진짜 좋았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음악소리에 귀를 빼앗기기도 했다. 혼자 오시는 분도 있으셨고 작업도 하시던데 나도 어느 조용하고 평화로운 날 다시 들려 음악도 듣고 이런 누추한 글도 쓰고 싶다. 무엇보다 아늑한 것이 참 마음에 든다.


친구들이 슬슬 도착했다. 차분하고 따뜻한 공간에 거뭇한 남자 다섯이 들어서니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는 지금부터. 오늘은 어디까지 갈까. 곱창전골이 땡기는 날이었지만 준회원님은 내장류를 기피하는 편. 아마 그래서 준회원일지도...? 여전한 망원의 스테디셀러, 행진으로 행진한다! (2부에서)

작가의 이전글 [맛동산 시리즈 06] 신당동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