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옥, 진구오뎅, 심야식당 텐조
2월은 쉬어갔다. 3월이 되었고 날잡기가 쉽지 않았다. 부쩍 바빠졌다. 평범한 직장인인 필자의 시간이 제일 쉬운 편이었다. 새벽부터 술을 빚고 면을 뽑아내는 친구, 밤새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잠못드는 친구, 시차를 거스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친구까지. 각기 다른 모습의 시간을 살고 있기에, 네명의 달력을 하나로 모으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개중 하늘을 나는 자의 달력이 가장 빼곡했기에 그 빈날에 먼저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총무님의 건강검진이 겹쳤고 결국 그를 제외했다. 셋이었다. 평양냉면 먹기 딱 좋게 쌀쌀한 날씨 아니던가. 회장님은 회장이 되어서 회원들 모두가 가본 우주옥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마를 탁- 칠 노릇. 연남동에 모였다.
3번째 방문. 처음은 혼자, 두번째는 회장님을 제외한 맛동산 회원님들과. (https://brunch.co.kr/@eotaekong/8) 난 두 번 모두 소금 베이스였던 '청'을 시켰기에 이번엔 '진'이었다. 나머지 둘은 역시나 '청'이었고 어복쟁반을 시켰다. 지난 글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소 '우'와 술 '주'가 만나 가게 이름이 우주옥이 되었다면, 주류 필수인 이곳의 방침은 따라야 마땅한 것. 술이 있어 오히려 좋지만 면발과 육수를 빨아들이며 느낀 건 역시(?) 평냉에는 소주가 떠오른다는 사실이었다. 멋모르는 말 아니겠냐마는, 멋몰라서 하는 말이다. 쏵쏵 땡기고 후룹후룹 마시는 이 거친 냉면 흡입 템포에, 어딘가 잔잔한 증류주와 막걸리의 리듬은 우릴 진정시켜주어 좋았지만 필자의 입장에선 아쉬운 흐름이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락음악처럼 소주가 음식들을 이어줬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호평만이 가득했던 나의 우주옥 감상에 조금 변한 것이 생긴 날이었다. 하지만 게 뭐 별거랴! 맛만 좋으면 됐지. 아삭하고 시원한 백김치의 감칠맛이 더 도드라지는 날이었다.
가격이 올랐고, 면도 그만큼 많아졌다. 어쨌든 맛있었고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에서 동행자들의 감상이 궁금하다.
Q) 우주옥, 어떠한가
준회원 유XX :
회장 조XX :
잘 먹어놓고 말 많다. 2차로 가자.
맛동산 대멸망의 지름길. 끝없는 지옥길. 이제 이 쌀쌀함도 머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물씬하였기에, 본능적으로 우리는 오뎅바를 떠올렸다. 위험함을 알면서도 적진에 뛰어드는 용맹한 장수와 같이, 진구오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옆으로 나란히 앉아 적셔진 오뎅을 건져올리는 저곳이야말로 오뎅바의 목적이자 소주의 늪이건만, 모두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건지 네모나게 둘러진 자리에는 빈 의자가 없었다. 제기랄. 또 다른 오뎅바 하나가 검색이 되어 그곳으로 갔겄만 담배 피러 나온 직원분께서 올라가기도 전에 자리가 없다고 친절하게 일러주셨다. 에라이. 다시 한번 가보고 아니면 회장님네로 가자. 그리하여 다시 한번 가보았더니 테이블 하나가 막 나왔기에 냉큼 앉기부터 했다.
물론 만족스러운 음식들이었지만, 우리가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오뎅바는 어쩐지 2차보다는 3차이고(이 역시도 '맛동산 시리즈 03'에서 이미 밝힌 바 있었다), 역시나 테이블보다는 저 나란히나란히 자리라는 것을. 소주 들어가는 속도가 시원치 않았다. 흐려진 정신에 꼬치 오뎅 하나 꺼내어 잘근잘근 씹는 것이, "파 좀 더 주세요!" 외치며 국자로 가득 뜬 국물에 떠다니는 파 조각들을 잘근잘근 씹는 것이 우리의 오뎅바라는 것을. 또 하나 배웠다. 허나, 들려오는 노래들이 추억을 불러왔으며 각자의 새로운 근황들을 뜨끈하게 나누었기에 소주가 적다한들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뭐, 내일 역시 출근하니 오히려 좋을 수 있었다.
막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약속한대로 회장님댁 근처로 갔다. 합숙 장소는 증산이었다.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딱 한 곳만 더 가자!" 했다. 괜찮은 곳이 있다는 회장님, 기대 그 이상이었다.
어째서인지 소주의 밤이 아니었다. 셋 다 맥주를 원했고, 이곳 맥주는 무척이나 시원했다. 그리고 맛있었다. 꿀꺽 넘어갔다. 아니, 꼴딱꼴딱 넘어갔다. 드디어 맛동산의 텐션이 흘렀다. 이건데, 당일은 왜 그리 늦게 터졌을까. 맥주 맛 최고, 안주는?
대게내장파스타...여러가지 메뉴 중 굳이 하나 골랐던 것인데, 굳이가 아니라 굿이였다. 내장의 맛과 냄새가 고스란하여 질리지 않고 자꾸 손이 갔다. 허참, 맥주를 하나 더 시키고 또 한 잔을 더 비웠을 때, 이번엔 하이볼이었다. 파스타가 맛있어 가라아게까지 손을 뻗쳤는데 이 역시도 훌륭했다. 가라아게는 잘 믿지 않는 편이다. 냉동의 맛이려나, 어쩐지 다 거기서 거기였다. 텐조는 달랐다. 이러면 곤란하지.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오키나와, 선토리, 하이볼 그리고 나는 오키나와 나머지 둘은 선토리. 술잔 든 손이 굼떴던 우리가 내리 네 잔을 거침없이 비워냈다.
가게 내부는 앙증맞았다. 그러나 요새 여기저기에서 일본 스타일의 술집들이 생겨나다보니,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았겄만! 맥주의 맛과, 안주의 맛과 더불어 직원분들의 친절한 서비스까지 어우러지니 이 분위기와 인테리어에도 설득력이 와장창 생겨나버렸다. 모처럼 다시 오고 싶은 집이 생겨나버렸다. 4 곱하기 3, 12잔을 갈아치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흥이 가시지 않은 채였다.
그래, 결국 또 이렇게 돼버렸다. 편의점에 들러 작은 맥주를 샀다. 오늘은 진정 맥주의 날. 가끔, 이런 날이 있다. 맥주 한잔에도 곧잘 배부르던 게 무진장 들이켜도 꼴딱꼴딱 잘만 넘어가는 날. 댁에는 위스키도 있었다. 팬티 바람으로 맥주와 위스키를 번갈아 마시며 마무리 토크를 진행했다. 제법 진지한 내용이었다. 새벽 세시가 되어서야 자리에 누웠다.
회장님댁은 두번째였다. 그때도 좋고 지금도 좋았다. 그는 새벽같이 나갔고 나는 알람 소리에 일어나 꾸역꾸역 샤워를 했다. 포근한 이불에 덮여있는 준회원님이 얄미웠지만 그래도 귀여웠다. 푹 쉬거라! 형은 나간다! 술 마신 다음날 아침, 눈 뜨기 전 숙취를 체크한다. 이날은 퍽- 괜찮았다. 소주가 아닌 맥주여서 덜했을 것이다. 집을 나서니 평화로운 풍경이 주어졌다. 이 동네 좋은데? 곧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다. 또 하나 더. 넷이면 더 재밌었겠다! 라는 싱그러운 아쉬움이 아마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