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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셉 Dec 03. 2024

가만히 있는 게 옳아요?

인생의 새로운 분기점

오늘은 귀한 분기점이었습니다.

가해 학생과 부모에게 사과받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진작에 이 자리를 요구받았지만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피해자는 사과를 받는다고 아무 일도 없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과 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사과 받는 것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울었습니다.

한 걸음 용기 낸 딸이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_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딸은 이 아이를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따돌리는 아이들이 딸의 친구들이었습니다.

결국 딸은 몰래 이 아이를 도왔습니다.

방학 때 차 안에서 대화를 하다가 이 일을 듣고

조심스러웠습니다.

나의 첫 마디는 "그러지 말지." 였습니다.

아무래도 이 사실이 드러나면 친구들 사이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힐 것 같아서입니다.

딸은 아무도 알지 못할 거라 자신만만했습니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아빠의 말에 딸은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옳아요?"

나는 딸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딸은 초등학교 때도 비슷한 일에 참지 않고

임원에 나가서 여러 공약을 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몇 주일이 지나서 우려했던 일이,

우려했던 일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따돌림을 당했던 아이가, 따돌렸던 아이의 무리에

들어가면서 딸의 이름을 넘겼습니다.

그 후, 딸은 고된 개학을 맞았고 힘든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친구였던 아이들에게 받는 고통은 더욱 심해졌고

딸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란 희망을 버렸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나서지 않을거야."

딸은 배신감과 억울함과 절망감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울고 있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부끄러운 일도 너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일은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다음에도 이런 일에 네가 나서도 된다고 생각해.

전에 차안에서 네가 물은 질문에

아빠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던 건,

그 말이 틀리지 않아서야.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우려처럼,

안타깝게 이 일은 드러나게 되었어.

그렇다고 다음부터는 나서지 않을거라 결심하는 대신,

다음에 또 이런 일에 나설때는

이번 같이 대가 지불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그때 또 나서면 되는 거야."

오늘은 우리는 한 걸음 자랐습니다.

자라 나는 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딸에게는 슈퍼 히어로인 것처럼,

아빠라서 당당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는데...

나도 참 많이 울었네요.

이렇게 더 깊어지기를, 인생을 알아가기를

그러면 더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겠지요.

<노래하는풍경 #1614 >

#학폭 #마무리 #따돌림 #사과 #히어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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