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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셉 Nov 11. 2019

시간을 기억해 낼 수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



연말이 되면 

몇 군데서 졸업사진을 찍게 됩니다.

탈북자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의

졸업사진을 촬영하기로 한 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려서 

예상했던 야외촬영 진행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실내에서 촬영하기 위한 장비를 고심하고 있는데

내 앞에서 조잘거리며 이야기하던 온유가 말했습니다. 


"지금 아빠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고

건성으로만 대답하는 것 같아."

마음을 들켜 버려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마음을 아느냐'고 말하지만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진심은

이렇게 일상 속에서 새어 나옵니다.


이사를 하고, 가장 먼저 알아본 일이 

온유가 다닐 피아노 학원입니다.

전에 온유가 손가락을 크게 다쳐서

한 달간 학원을 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쉬는 동안만큼

감각을 잃어버려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며

이번에는 곧바로 학원을 등록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등록하고 며칠이 지나서

학원이 어땠냐는 질문에

예상 못 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빠, 그 학원에서 나는 혼나고 싶어."

"응?"

"오늘 학원 아이들이 원장님께 혼났거든.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했어.

혼나긴 혼나는데

무섭긴 무서운데

 그 가운데 뭐가 있는 것 같은 거야.


사랑의 꾸지람이라 해야 하나?

맞아. 가운데 있는 게 사랑인 것 같아.

그래서 나도 한 번 혼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혼나면 어떤 마음이 들까 궁금했거든."


사람들은 누구나 갈등을 만납니다.

만일 갈등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하면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등을 돌리게 됩니다.

상대가 없으면 평온함도 유지할 수 있고

더 거룩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를 지워내는 것으로

모든 갈등을 풀어 낼 수는 없습니다.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떠들어 대는 아이들 때문에

머리가 웅웅거릴때도. 

우리는 매일 갈등을 맞닥드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갈등은 필연적이지만

갈등 속에 기억해야 할 진심을 생각합니다.


말로 대답하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아빠의 대답처럼,

엄한 표정으로 학원 아이들을 혼내지만 

아이에게도 들켜 버리는 선생님의 진심처럼,

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사랑, 진심이 있습니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에게 

기도해줬더니 온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는 내가 꼭 잠들려고 할 때나,

학교 가려고 할 때, 집을 나서려고 할 때

안아주거나 기도해주는 것 같아."


딸아이가 기억해준 시간이 고마웠습니다.

이런 가볍고 스치는 순간들이

일상에 가득 쌓이겠지요.

만일, 서로에게 갈등이 생겼을 때나

인생의 험난한 풍랑 속에 흔들릴 때

이 시간들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애정 어린 포옹,

사랑과 기도, 매일의 평범한 일상에 담긴 진심을.


#갈등속에서 #꼭지켜야할진심 #평범한일상 #사랑과기도 

#일상에담긴진심 #육아를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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