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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셉 Jul 19. 2022

어둠 속에서 살아남다

수용자 자녀들의 용기

특별한 날, 축사를 부탁받고는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입니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한 번은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서있다가 결국 아무 말을

못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언어장애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요.

그 뒤로 마이크를 잡을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사람들 앞에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마음먹고는 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말을

설득력 있고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최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그 자리를 피하거나

도망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피하고 싶은 자리,

면하고 싶은 상황에서

나는 최대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 자리를 지키려 했고

도망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놀랐습니다.

축사를 말해야 했던 특별한 날은,

다름 아닌 출간기념일이었습니다.

7 명의 수용자 자녀들이

수용자 자녀로 살아간

시간을 담아 책을 펴냈습니다.

<어둠 속에서 살아남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의 내용은

아이들의 생존기에 가깝습니다.

추천사에도 적었지만

한 번에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나는 두려움 앞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순간을

다시 불러 세워서 직면하다니.

지난 아픔 앞에 다시 서서

그 시간을 들여다본

아이들의 용기에 놀랐습니다.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어떤 불행은 나눌 수조차 없다."

이 말처럼 부모님이 수감된 후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혼자 간직한 채 속 깊은 연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대단하고 멋진 인물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는

사람처럼 보이려는 처절한 연기를 했습니다.

출판기념일에 아이들이 작가가 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물론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빛과 길이 되어 주겠구나.

나눌 수조차 없는 불행이라 생각해서

어두움 속에 머물러 있는 누군가에게

이들의 용기는 길을 보여줄 수 있겠구나.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존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빛을 비춰줄 수 있겠구나.'

상처가 가득했던 시간은

또 다른 상처 입은 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용기는

신음하는 누군가에게

숨 쉴 구멍이, 걸어갈 길이,

작은 빛이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

#특별한날 #수용자자녀작가님들

#어둠속에서살아남다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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