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 자녀들의 용기
특별한 날, 축사를 부탁받고는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입니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한 번은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서있다가 결국 아무 말을
못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언어장애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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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마이크를 잡을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사람들 앞에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마음먹고는 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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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말을
설득력 있고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최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그 자리를 피하거나
도망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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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고 싶은 자리,
면하고 싶은 상황에서
나는 최대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 자리를 지키려 했고
도망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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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놀랐습니다.
축사를 말해야 했던 특별한 날은,
다름 아닌 출간기념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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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명의 수용자 자녀들이
수용자 자녀로 살아간
시간을 담아 책을 펴냈습니다.
<어둠 속에서 살아남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의 내용은
아이들의 생존기에 가깝습니다.
추천사에도 적었지만
한 번에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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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려움 앞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순간을
다시 불러 세워서 직면하다니.
지난 아픔 앞에 다시 서서
그 시간을 들여다본
아이들의 용기에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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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어떤 불행은 나눌 수조차 없다."
이 말처럼 부모님이 수감된 후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혼자 간직한 채 속 깊은 연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대단하고 멋진 인물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는
사람처럼 보이려는 처절한 연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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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일에 아이들이 작가가 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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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물론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빛과 길이 되어 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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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 수조차 없는 불행이라 생각해서
어두움 속에 머물러 있는 누군가에게
이들의 용기는 길을 보여줄 수 있겠구나.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존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빛을 비춰줄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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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가득했던 시간은
또 다른 상처 입은 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용기는
신음하는 누군가에게
숨 쉴 구멍이, 걸어갈 길이,
작은 빛이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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