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은 진짜 아는 것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왕자 코모두스는
막시무스 장군을 질투한다.
그가 품은 욕망은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고
결국 자신을 파멸시킨다.
다윗은 아직 청년일 뿐이었지만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질투한 사울왕은
다윗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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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데 없는 사무엘은
엘리 가문의 심판을 듣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사무엘의 부모는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을
만날 수 있을 뿐이었고
자신의 인생을 엘리 가문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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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과 함께
제사장 가문을 대신해서 사무엘이
선지자로 자라나게 됨을
그 사실을 온 이스라엘이 알게 됨을 말하고 있다.
사무엘 = 위대한 선지자 등식을 생각하지만
그는 의지할 데 없는 아이에 불과했다.
그 아이를 하나님이 만나셨고
어두운 시대에 빛을 밝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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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누구를 만나시는가?
아무 데도 의지할 때가 없는 이를
만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꼭 제사장 가문만을 만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도리어 그들에게 먼저 심판과 열매를 물으신다.
많이 가진 자에게는 더 많은 것을 물으신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능력 있는 자를
하나님이 골라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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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우리는 교회를 탓한다.
하나님이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다른 이를 탓한다.
물론 그런 이유를 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들과 공존하고 있다.
그들의 어둠에 침묵하시고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아직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부으신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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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는 말한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삼상 3:18)
엘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적 동의가 아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그 뜻대로 사는 것은 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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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그와 함께 하셨다"(삼상 3:19)
야다 : 안다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