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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셉 Jan 29. 2023

막시무스 장군을 질투하는 대신

안다는 것은 진짜 아는 것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왕자 코모두스는

막시무스 장군을 질투한다.

그가 품은 욕망은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고

결국 자신을 파멸시킨다.

다윗은 아직 청년일 뿐이었지만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질투한 사울왕은

다윗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의지할 데 없는 사무엘은

엘리 가문의 심판을 듣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사무엘의 부모는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을

만날 수 있을 뿐이었고

자신의 인생을 엘리 가문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과 함께

제사장 가문을 대신해서 사무엘이

선지자로 자라나게 됨을

그 사실을 온 이스라엘이 알게 됨을 말하고 있다.

사무엘 = 위대한 선지자 등식을 생각하지만

그는 의지할 데 없는 아이에 불과했다.

그 아이를 하나님이 만나셨고

어두운 시대에 빛을 밝히셨다.

하나님은 누구를 만나시는가?

아무 데도 의지할 때가 없는 이를

만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꼭 제사장 가문만을 만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도리어 그들에게 먼저 심판과 열매를 물으신다.

많이 가진 자에게는 더 많은 것을 물으신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능력 있는 자를

하나님이 골라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우리는 교회를 탓한다.

하나님이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다른 이를 탓한다.

물론 그런 이유를 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들과 공존하고 있다.

그들의 어둠에 침묵하시고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아직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부으신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엘리는 말한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삼상 3:18)

엘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적 동의가 아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그 뜻대로 사는 것은 별개다.

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그와 함께 하셨다"(삼상 3:19)

야다 : 안다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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