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
계속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성경은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기술하고 있다.
상대가 되지 않지만
요나단은 그가 믿을만한 동료와
적진에 뛰어든다.
신앙의 레디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고백을 통해 현실 너머에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만날 수 있다.
단 두 명의 전투를 통해
전쟁의 기운이 달라졌다.
이를 느낀 사울은 급히 제사장 아히야에게
언약궤를 요청했다.
블레셋 진영의 소동에서의 소동이
심해지자 그는 제사장에게 말한 명령을 거두고
전쟁터로 뛰어나간다.
전쟁은 승리했지만
사울 왕의 민낯을 확인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것처럼
이번에도 전쟁에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언약궤를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대했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유능한 램프의 지니인가?
상대의 막강한 전력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인가?
요나단은 그의 병기든 자에게 말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다." (삼상 14:6)
그의 고백과 함께 기억해야 할 지점은
믿음의 고백 이후 달려간 그의 걸음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멋진 고백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생의 걸음 자체가 믿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