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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셉 Feb 19. 2023

근시안적 셈법

명령앞에 가성비

명령앞에 가성비

대표적으로,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깨뜨린

향유를 돈의 가치로 계산했다.

많은 경우, 하나님께 드린 가치를

평면에 놓아두고 평가한다?

얼마만큼의 가치인가?

그래서 과부의 두렙돈을

이 기준으로 폄하할 때는 얼마나 많은가?

똑같은 시간을 살지만 마음에

은혜가 넘쳤을 때는

드렸던 모든 시간이 값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황폐하거나

은혜가 식으면

교회에서 보낸 수고와 헌신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게 된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한

시간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시간당 얼마로 노동의 비용이

측정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빼버리면 종교생활만 남는다.

교회 안에 머물면 머물수록

허비와 손해로 계산된다.

문제는 복잡해지지만 단순하다.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가?

눈앞에 사람을, 문제 많은 교회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모든 수고는 계산하게 되지만

그 너머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천국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 같다는

말씀처럼, 밭을 보느냐, 그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보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계산되어 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

사울왕은 하나님이 내린 명령을

세속적 가치와 뒤섞었다.

영원을 평면에 늘어놓고는

가격대 성능비로 순종했다.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명령에 순종해서

진멸했다. (삼상 15:9)

그는 셈에 빨랐지만

그 너머를 보는 지혜가 없었다.

가나안에 입성할 때 아간이 범한

탐욕과 유사했다는 사실을

사울은 알지 못했을까?

블레셋의 전투, 무모한 금식 명령 등

이미 몇 차례나 실수했던 사울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또 한 번의,

그러나 마지막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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