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지로 향하는 방향
나는 기회비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왜일까?
기회비용을 묻는 나 자신에게
잠잠하라고 종종 꾸짖곤 한다.
날씨가 무더웠다.
그래서 몸이 무거웠고
가방도 무거웠으며, 편두통이 있었다.
그래도 오늘 만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그들에게 내가 도움받을 일은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더욱 섬기려 애썼다.
덕분에 3시간이 넘도록 버스 안에서
웅크려 잠들 만큼 지쳤다.
나는 기회비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해야 할 일은 밀려서 아둥바둥하고
더운 날에 이 무슨 낭만 타령인가..
스데반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바울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돌에 맞았다.
돌로 친 무리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도시 밖으로 끌어 내쳤다.
죽은 줄 알았던 바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사지로 다시 향하기를 반복했다.
자신을 걱정하거나
눈에 울음이 가득한 친구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가 마땅히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파이프라인과 파이어족과 같은
단어가 말해주듯 인생의 무게에
모두가 신음하고 있다.
떠밀리듯 모두가 기회비용이나
가성비에 목숨을 건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지만
과연 바울이 말하고 있는 마땅한 고난이
무엇일까?
그저 최선을 다한 삶을 말하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멋진 말잔치말고
조금 더 구체적인 무엇들을
아버지께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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