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월요일 일을 끝내고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부모님은 농사일 때문에 시골로 가셨는지 집안이 조용했습니다. 집에 혼자 있으니 쓸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예전 같으면 부모님도 집에 계셨을 텐데."
필자는 문득 어렸을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과거 아버지는 심장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하였지만,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몸을 혹사하더니 기어이 탈이 나버렸습니다. 결국 서울에 위치한 대형병원으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필자는 고3이었지만 철없이 노는 것이 좋아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친구들과 의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의리 때문에 나쁜 일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던 필자는 리더인 친구와 같이 후배들에게 손찌검을 하게 되었습니다. 철이 없던 당시에는 그것이 큰 잘못인지 몰랐습니다. 그때 복도를 지나가던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들켜 친구와 저는 교무실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맞을 매를 그날 다 맞은 것 같았습니다. 친구와 저는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저 서로 웃기만 하였습니다.
"너는 나중에 실용 음악 전공이라도 할 테니 정학이라도 괜찮지 않겠냐.?"
"나는 정학되면 공장이나 들어가야겠다."
다행히 은사님의 배려로 인해 정학은 면했지만 2주 동안 봉사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도 필자는 집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2주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요즘 들어 집에 잘 보이지 않던 어머니께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주말에 형이랑 같이 서울에 올라오너라. 아무래도 아버지 수술하실 것 같구나."
서울 올라오는 동안 편찮으신 아버지 걱정보다 주말에 놀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계속 쏟아냈습니다. 저녁이 다되어 병원에 도착하고 병실에 가보니 평소 덩치가 크고 정정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환자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철없이 행동하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아버지 손을 잡고 한참을 침대 옆에 붙어 있었습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학교의 연락을 받은 어머니는 급하게 광주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엄하고 무섭던 어머니는 피해자의 부모님에게 선처를 부탁하며,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필자는 크고 작은 사고를 계속 일으켰습니다. 결국 30대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뒤늦게 철이 들어 말썽을 피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께 맛있는 식사도 사드리고 좋은 곳이 있으면 바람도 쐬러 다닙니다. 하지만 조금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부모님의 속을 덜 썩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장시간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필자는 밖에 있는 시간보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는 지금, 당신은 누구와 함께 보내고 있나요?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