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모 쓴 늦깎이 나이팅게일의 졸업을 기념하며.
푸르른 새싹이 활짝 피는 새로움은 불현듯 나에게도 찾아왔다. 그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학사학위를 따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사 학위 전공심화를 시작하게 된 것은 실무에 조금 더 도움을 받고자,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학사학위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라는 고민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병원의 간호차장님과 응급센터 간호과장님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의 배려가 있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전공심화과정을 통해 접하게 된 분들은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이었다. 각자 살아가는 환경도 틀리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배움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공심화 학사학위를 지원한 것이다.
배움이란 무엇일까?
문득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들었던 생각이다. 과거 전문대 재학 중에 병원 실습을 다녀와도 임상을 경험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졸업 후 간호사 면허를 가지고 병원을 취업하더라도 제대로 된 간호 행위를 수행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신규 간호사로 처음 임상을 접했을 때 어려움이 많았던 이유는 학교에서 습득한 이론과 실제 현장의 다름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공심화학습을 통해 임상에서 어려움이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vSIM for Nursing (가상 간호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제는 임상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을 학교에서도 실제처럼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상 간호사로 9년 차에 접어든 입장이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시뮬레이션을 직접 해보니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또 어떤 기본적인 것을 간과하고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배움'이란 끝없는 여정인 것 같다.
병원 일과 병행하는 학사 일정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학과 교수님들과 반 대표 선생님을 비롯해서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서로를 따뜻하게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말수가 적었던 나에게도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주며, 살갑게 대해주었다. 무엇보다 반세기 동안 간호사를 육성해 온 유구한 역사 및 기독교의 사랑을 바탕으로 일구어진 학교라서 그런지 실무와 더불어 따뜻한 인성이 가미된 전인간호를 느낄 수 있었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선택지가 많다. 그럼에도 다양한 선택지를 마다하고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1분 1초를 다투는 의료현장에서 간호사로 오랜 시간 일을 한다는 것은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특별하고 멋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묵묵히 한 가지 일에 매진하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온다는 것을.
당신과 우리에게 영웅이란, 매 순간 사람들을 구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슈퍼맨이 아닌 집 앞 정원을 묵묵히 가꾸어 나가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어느덧 신록의 계절을 지나. 한 해의 끝에 다다랐다. 지난 일 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졸업식 날 빛나는 학사모를 쓰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소망해 본다.
내년 이맘때쯤 푸르른 교정과 환하게 빛나던 청춘의 시간을 그리워하겠지?
나의 사랑 신록의 계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