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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Mar 17. 2024

아직도 나는 부모님의 그늘에서 산다.

< Episode 5 >






아침 해가 밖은 지 한참 지난 시간. 전화 진동음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드르륵 드르릉.......


"여보세요.?" "네... 네.. 알겠어요."



아버지는 투석을 하다가도 한 번씩 부정맥이 생겨서 투석이 끝난 후 응급실에 내려갈 때가 있었다. 오늘도 투석 중 부정맥이 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잠깐 다녀오라는 어머니의 전화였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 겨우 세수를 하였다. 



병원을 향하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일도 그만두고 시험도 떨어졌겠다. 나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하지만 마냥 쉴 수만은 없었다. 이제 20대 초반이 아닌 30대 초중반에 접어드는 시점에 나는 마음속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병원 문 앞, 하지만 응급실 안에 들어가려니 발걸음이 띄어지질 않았다. 병원은 매번 가도 적응이 되지 않는 곳이다.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일하고 있었고, 병원 진료를 위해 내원한 사람들은 고통의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떤 때는 전쟁터나 혹은 시장 같기도 했다. 항상 시끄럽고 조용할 날이 없는 응급실이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계셨다. 가슴 통증이 조금 가라앉은 모양인지 조용히 주무시고 계셨다. 아버지의 손을 만져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잡아보는 손이었다. 아버지의 손은 까무잡잡하고 거칠었다. 긴 세월 속 오 남매를 키우기 위해서 열심히 일만 한 손이었다.



며칠 전 아버지를 따라 시골 일을 도와드리러 간 적이 있었다. 농번기 때 시골은 젊은 인력을 구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나는 의례행사처럼 아버지를 따라 시골일을 도와드려야 했다. 



매사에 급한 성격이던 아버지 그리고 모든 것을 느긋하게 천천히 하려는 아들, 이 둘이 만나서 함께 일하면 항상 크고 작은 잡음이 일어났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투정에 서운할 만도 했지만 그럼에도 고생한 아들을 위해 저녁을 사주셨다. 더불어 손에 10만 원을 쥐어주셨다.



"잘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아무튼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거라. 그리고 남 탓할 필요 없다. 그저 너만 잘하면 된다."


"네."



아버지는 공무원 준비를 한답시고 멀쩡히 다니던 병원을 그만둔 아들이 걱정이 된다며 용돈을 쥐어주셨다. 그리고 이후 며칠 동안을 도와주는 사람 없이 홀로 시골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탈이 나셨다. 당시에 용돈을 받고 그저 좋아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버지가 몸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계셨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은 그만두었고, 열심히 준비하던 시험은 떨어졌다. 그리고 취업은 잘 되지 않았다.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도 없었다. 아버지를 위해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남몰래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훔쳤다. 창피했다. 다 큰 놈이 눈물이라니... 그러나 편찮은 몸을 이끌고 농사를 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냐.?" 


"아니,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느라고."



병실 침상에 와보니 언제 오셨는지 어머니가 와계셨다. 아버지도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계셨다. 아버지는 다행히도 입원을 안 해도 되는 모양이었다. 며칠 분의 부정맥 약을 처방받고 퇴원하였다. 


 

집으로 향하는 길.


뒤에서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며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갔다. 아버지는 걸으면서도 숨이 차셨는지 중간중간 쉬어가며 걸으셨다. 어린 시절 커 보이던 아버지의 등은 세월의 풍파로 인해 어느새 작아지고 축 처져있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집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떨어지고 저녁이 되었다. 아버지는 시장하셨는지 국밥이라도 먹고 가자고 말씀하셨다. 



따뜻한 국물을 들이켠 아버지는 제법 속이 편해지신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크게 아프지 않으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걱정이 몰려왔다. 언제까지 아버지는 일을 하실 수 있을까? 어머니 또한 오랜 아버지의 병간호 그리고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아파지셔서 병원진료를 받고 계셨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부모님의 그늘에서 사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괴로웠다. 몸은 어른이지만 아직도 독립하지 못한 아들이 얼마나 걱정이셨을까?



아프고 연로해지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없던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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