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에 들어오는 공기가 제법 차갑던 날이었다.
전날 어머니에게서 급한 전화가 와, 다음 날 오후 본가로 향했다. 최근 아버지는 폐렴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뒤 집에 머무르고 계셨다. 퇴원 후 나아질 줄 알었던 아버지의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아 보였다. 오랜 시간 투석 치료로 이미 지쳐 계셨던 아버지는 병원 치료 중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중환자실까지 다녀오신 터였다.
그 후로 아버지는 자신의 상태가 나빠진 것을 슬퍼하며 어머니와 함께 우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섯 남매를 모두 불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다. 전날 어머니와 통화 중 아버지 상태와 더불어 무슨 이유에서인지를 여쭤보니, 아버지 본인 스스로 남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다섯 남매에게 유언을 남기고 싶다고 하신 모양이었다.
그날 나는 병원 치료 이후로 기운 없이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야윈 손을 꼭 잡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 저 왔어요."
힘겹게 눈을 뜨신 아버지는 나를 천천히 바라보시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어... 우리 아들이 왔구나. 그런데 지금 아침이니.?"
"아니요, 아버지. 지금은 오후예요. 저 오늘 쉬는 날이라 아버지 뵈러 왔어요."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시긴 했지만,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 정신도 온전히 깨어 계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부르트고 야윈 손으로 흰 봉투를 하나 건네 셨다.
"내가... 너희들한테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
흰 봉투 안에는 아버지가 평생 몸 쓰며 고생하며 모으신 쌈짓돈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농사일과 고물들을 팔아가며 힘들게 돈을 모으신 것이다. 그것을 다섯 남매를 위해 나누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것을 차마 받을 수 없었다. 마음이 무거워고 아려왔다. 봉투를 손에 든 채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나는 그것을 차마 주머니에 넣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곁에 있던 어머니와 큰 누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이 돈은 우리한테 쓰는 것보다... 아버지를 위해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아버지가 남긴 봉투는 마치 아버지의 삶 그 자체 같았다. 늘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모든 걸 아낌없이 내어주셨던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흰 봉투는 우리에게 단순한 돈이 아니라,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마지막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