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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자리에 남겨진 마음

by 팔구년생곰작가






예상치 못하게 서울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급히 짐을 챙기고 기차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날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다. 우산을 펴도 소용이 없을 만큼 굵고 빠르게 떨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나는 조심스레 역으로 향했다.



기차에 탑승해 내 좌석을 찾았을 때, 창가 자리에 어떤 남자가 앉아 있었다. 순간, ‘잘못 앉으신 건가?’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저기요…” 하고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조금 더 큰 소리로 “저기요, 죄송하지만 거기 제 자리예요. 나와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말했더니,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미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서울 도착할 때까지 여기 앉아 있어도 괜찮을까요?”



당황스러움과 불쾌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분명 내가 예약한 자리였고, 창가 쪽이라 마음에 들어 기대했던 자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정중히 부탁하는 모습을 보니 딱히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결국 나는 통로 쪽 자리에 앉았다. 문 가까운 자리라 불편하고 사람들 오가는 소리도 들렸지만, 별수 있나 싶어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자리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정말 감사해요. 혹시… 사탕 드시겠어요?”



부끄러운 듯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내 자리에 앉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사탕 한 알로라도 전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이 흘러 서울에 도착했다. 짐을 챙기려 일어났는데, 내 옆자리 남자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기차 역무원이 다가와 부드러운 말투로 그를 부축하며 일어서는 걸 도왔다.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아… 시각장애인이셨구나.’



역무원과 나란히 걷는 그의 모습, 여의도로 가는 지하철을 묻는 대화, 그리고 지하철역 앞에서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하며 웃는 그의 뒷모습까지. 모든 장면이 마치 천천히 흘러가는 영화처럼 눈에 담겼다.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처음에 그를 보고 느꼈던 불쾌함이 너무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내 기준에서만 상황을 판단하고 감정을 쌓았던 것이다. 그저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그 마음마저, 사탕 하나 건네는 손짓마저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방의 사정을 모르면서도 쉽게 판단하고, 작은 불편에도 마음을 닫아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날, 비 오는 아침 기차 안에서의 짧은 만남은 내게 조용히 속삭이는 듯했다.


“조금만 더 따뜻하게, 조금만 더 너그럽게 세상을 바라보자.”


사소한 배려가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되고, 아주 작은 친절이 어떤 이의 하루를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쌓여 이 사회가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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